오랜만에 만나게 된 지인들과 식사를 하게되어 먹을곳을 정하기로 했었는데, 상호 편의를 도모하느라 선택권을 서로 미룬 끝에 겨우 한식당으로 정하게 되었다. 모두들 메뉴를 정하고 기다리는데 한 분이 메뉴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남편분께서 아내에게 늘상 저렇게 결정을 못하고 시간을 끌고있다며 핀잔을 던지자 아내는 얼굴을 붉힌다. 보다 못한 남편이 이걸로 정하면 어떨까하고 추천을 하자 들은체도 않고 계속 메뉴판을 숙독하고 있어 모두를 민망케한 진풍경을 연출하고 말았다.
음식이란 먹고나서 만족하지 않더래도 다음 기회에는 다른 결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서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인 것 같은데 이렇듯 매사에 결정이 쉽지않은 결정장애는 일상에서도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곤란한 지경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삶 속에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일들은 그 결과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기에 선택의 결단이 생을 좌우하기도 하고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로 생을 내어주게 되는 예화들도 얼마든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격 유형에 따라 결정장애 요인 또한 다르겠지만 언제나 어려운 난제로 일상에서도 어쩔 수 없는 많은 결정을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살아간다. 선택의 순간을 미기적거리거나 힘들어하는 경우를 중복으로 만나게 되면 천상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치부받게 된다. 우유부단이 결정장애의 요인으로 정당하지 않은 전례를 만들게되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번번히 치루어야 하는 행사처럼 일상 속에 끼어들도록 방치하는 셈이 된다.
다행인 것은 다양한 성격유형의 이론을 근거로 인간이해를 위한 성격유형검사라는 이론이 연구개발되어 감각과 직관으로 분류되는 척도의 관점에서 비롯해 사고와 감정이 인식위주 측면과 유연적 측면, 판단과 계획성등으로 선호지표를 만들어 성격유형 검사라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신체적 장애와 정서적 장애를 비롯해 지적장애에 못지않은 결정장애나 개인이 가진 성격장애등을 극복해야한다는 연구가 장애 다변화 시대를 대비하듯, 의학계의 지대한 관심 속에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희소식으로 들린다.
달력이 넘겨지고, 계절이 바뀌다보면 아쉬움과 자책이 밀려들면서 공항장에를 앓듯 하루들 조차도 소망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결정을 해야하는지. 얼마나 먼 길을 헤매고 돌아와야 장애다변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롭고 유연한 어른이 될 수 있을찌.
일상 중에 사소한 일로 분노를 노출시키는 일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비일비제히지만 유독 비슷한 일들로 문제를 삼으며 분노의 본질이 거의 같은 범주 안에서 재기되고 왜 화를 나게 만드느냐며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는 경우, 그 상대가 직계이기 십상이라서 돌아서면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또한 분노조절 장애군으로 구분되고 있다. 화를 내게되는 동기라든가, 그 동기가 문제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타당성이 있는가. 분명 상대가 저지른 실책 때문에 화를 낸 것인가. 분노 유발의 효시와 원천을 결택하고 분변하여 상대가 겪어야 하는 아픔의 헤아림을 필요로 한다.
환경적으로나 유전적인 요소의 취약한 부분을 갖고있긴 하지만 화를 다스리며 분노를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과 취약한 부분을 스스로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있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주변과 가족에게 대한 예의요 미덕이 아닐까. 아름다운 관계를 위하여서도.
인류사회의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은 식량문제를 제외하곤 대개가 문화적 장애였었다. 의사소통의 부재와 다변화 되어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급한 걸음으로 추향해도 못미칠 때의 상실감이 장애다변화 시대를 더욱 부추기는 것 같다. 심리의학의 발달이 더 많은 장애를 부풀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의학은 고도로 발달하고 연구가 진행 중인데도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음이 나만의 착각일까.
장애의 애로를 들어주거나, 내미는 손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건강하고 함께 아우러지는 세상이 어쩐지 요원해 보인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 또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어야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며 나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소격감이 인다. 인간역사의 아이러니가 행복추구권이라는 결론적 사실이 우리를 서글프고 울적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