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길목을 돌아 싱그러운 5월로 들어섰다. 대기는 싱싱하고 맑은 향기로 가득하다. 5월의 초입에서 어린이날이 마음에 새겨주듯 가정의 달을 일깨워주고 있다. 봄날이 눈부시다. 아이들처럼.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라 하냥 경쾌해진다. 아이들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열려지고 마냥 좋다. 혼자 힘으론 어림없는 세상임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애잔하도록 사랑스럽다. 어쩌면 어른의 무게를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서 그럴찌도 모를일이다. 아이들은 쉼 없이 움직이고 흔들어대고 속삭이고 웃고 달리고 그러다가 넘어지고 디딜것만 있으면 기어오르고 바람잘 날이 없다. 지치고 고달파서 쉬고 싶은 어른들에게 무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아이들은 우리 끼리만 알고 있자고 약속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만 바라보고 살아간다. 아이들 마음 속에는 파아란 하늘이 고여있다. 아이들 마음 속에는 꽃송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아이들 마음 속에는 너울너울 나비들이 춤추고 있는 무한 평원이 펼쳐져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으로 마알간 미소가 고이고 아빠의 사랑으로 키를 키우나보다. 엄마 아빠랑 어울리고 싶어, 얼른 몸집을 키우고 싶어서일게다.
아이들만 보면 안아주고 싶어진다. 아이내음은 향수 같은 아련함이 고여있어 늘 그립다. 손주들도 이젠 청소년으로, 청년으로 훌쩍 커버려 주일학교 아이들만 보면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 부터 꼬옥 껴안아준다. 아이들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찌, 아이들이 있어주어서 행복하다고 속삭여주고 싶다. 세상 물정에 찌들고 마음에 먼지가 앉아버린 어른이 된 지금이라서 아이들이 고귀하기 그지없고 예쁘기가 한량없다. 옹기종기 앞다투어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아이들의 조잘거림은 노랫소리다. 화려한 심포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노라면 마음이 푸르러진다. 동심에는 거짓이 없는 순수만 머물고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를 쓰고 싶어진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맑은 눈이기를 기도해야 하리라. 하지만 고국의 어린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달픈 현실이 엿보인다. 그냥 아이들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아픔을 어른들은 모르고 있는걸까. 못 본척 하는걸까. 아이들은 성적경쟁으로 휘둘리며 몰아붙여지는 것을 부모로선 최선을 다한다는 착시현상 의 실책일까. 어긋난 문교정책과 경쟁사회의 피해자가된 어린이들은 학교와 학원가를 돌며 패스트 푸드로 끼니를 떼우고 어둠이 내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길을 외로움으로 몸을 추스르며 귀가하는 일상을 언제까지 감당해야하는 것인지. 마음껏 하고 싶은 놀이를 하며 여유롭게 뛰놀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아이들이 누구의 아이들이란 말인가. 엄마 아빠와 함께 가꾸고 누려야 할 자유가 아니던가. 부모와 사회가 자켜주어야 할 아이들인데 여린 가슴에 쌓인 아픔과 누적된 피로를 풀어주어야 하는일은 누가 감당 해야할까. 어른들의 할 일이다. 동심을 고이 간직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지켜주어야 한다. 이즈음의 교육환경은 동심을 돌보기 보다는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내려는 빗나간 교육관 탓에 순기능을 놓쳐버리고 동심마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처럼 보여진다. 이해되지 않는 불필요한 당위성을 내세우며 아이들에게 어이없는 의무감을 요구하며 빗나간 계몽을 심어주고 있다.
동심을 덮어버리거나 외면 해버리면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고 순정해야만 하는 인간미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크나큰 누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무시해버리고 있다. 가족과 한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시간, 이웃 친구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 나눔을 실천하는 시간들은 결코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다. 공부를 위해서 제외해도 되는 시간들이 아니란 것이다. 5월의 하늘처럼 어린이들도 티 없이 청청하고 맑고 투명하고 푸르름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날 하루만이 아닌 하루하루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5월이 되면 고국의 어린이들처럼 삶의 만족도가 꺾여진 채 섬처럼 살고있는 아이들은 없는지 오지랖 넓게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고국을 떠나와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행복해야만 하는 세상을 꿈꾸며 바램하고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