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트렌드
경기 불안·고물가에도
부유·고령층 외식·여행
가계지출 1년 새 6.1%↑
저소득층은 생활비 압박
미국인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정작 지갑은 좀처럼 닫지 않고 있다. 고물가와 높은 이자율, 고용시장 둔화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자들의 경기 체감은 크게 악화됐지만 실제 소비지출은 오히려 꾸준히 늘어나는 이른바 ‘소비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을 보유한 고소득층과 고령층의 씀씀이가 미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식료품과 주거비 등 필수 생활비 부담에 허덕이면서 소비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방정부 통계를 분석한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1년 동안 미국 가계의 소비지출은 명목 기준으로 6.1% 증가했다. 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소비도 2.6% 늘었다. 소비자들이 각종 설문조사에서는 경제 상황과 물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이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소비가 계속되는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충분한 계층이 있다. 주가 상승과 주택가격 강세로 자산가치가 늘어난 고소득 가구와 고령층이 외식과 여행, 여가·엔터테인먼트 등에 적극적으로 돈을 쓰면서 전체 소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소득이 낮은 가구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주거비와 식료품, 보험료, 유틸리티 등 필수 지출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압박받고 있다. 같은 미국 경제 안에서도 한쪽에서는 여행과 외식을 즐기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생활필수품 가격을 걱정해야 하는 이른바 ‘K자형 소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심리와 실제 소비 사이의 괴리도 커지고 있다. 높은 물가와 금리, 고용 불안 때문에 향후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미국인이 많지만 당장 소비를 크게 줄이지는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행과 외식, 공연 등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자리 잡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같은 소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다. 소비가 소득 증가만으로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저축을 줄이는 방식으로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인저축률은 4.1% 수준으로 낮아졌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도 소비를 계속하면서 가계의 재정적 완충장치가 그만큼 얇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신용카드와 자동차 대출 등 가계부채 부담도 변수다. 높은 금리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지고, 고용시장마저 본격적으로 악화하면 지금까지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소비가 빠르게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경제에서 개인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계속 지갑을 열 수 있느냐는 향후 경기의 방향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현재까지는 “경제가 어렵다”는 소비자들의 말과 달리 실제 지출은 예상보다 강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산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소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소비의 놀라운 회복력 뒤에 숨어 있는 이 같은 양극화가 향후 경제의 또 다른 위험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