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세상에는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상대방 보다는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뉴욕의 한 전화 회사에서 통화 중에 어떠한 단어가 제일 많이 쓰여지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1위는 “나”라는 1인칭 대명사였다고 합니다. 그 만큼 사람의 관심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당신은 단체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누구의 얼굴을 찾는가?” “오늘 밤 만일 내가 죽는다면 내 장례식에 올 사람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우리는 무조건 상대방을 현혹시켜 친구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참된 친구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알프렛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인간은 고난 속에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상대방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인간의 모든 실패는 바로 그러한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친구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관심만이 독일 국민들은 물론. 그의 부하들까지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또한 패전의 책임을 황제에게 고스란히 떠넘겼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불길한 사태가 밀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밀려왔습니다. 이 때 어떤 한 소년이 황제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간에 저는 언제까지나 폐하를 황제로서 존경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며 지도자 이십니다.”
이 편지를 읽고 감동한 황제는 그 소년을 궁으로 불렀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황제를 위로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황제는 살얼음 같은 현실의 비정함을 잊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황제는 그 소년의 어머니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어느 날 백악관을 찾아 갔습니다. 마침 현직 대통령은 부처에 외출을 하고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백악관을 둘러보던 루즈벨트는 재임시절부터 근무하고 있던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청소부. 요리사. 심지어는 심부름을 하는 직원까지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는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하녀 엘리스를 만나자 마자 몹시 반가운 기색으로 물었습니다. “엘리스. 지금도 옥수수 빵을 굽고 있나” “예.. 하지만 지금 대통령 부처는 드시지 않아요. 그저 저희들이 먹으려고 조금씩 구울 뿐이랍니다.” 이 말을 들은 루즈벨트는 참 안됐다는 듯이 이렇게 말 했습니다. “쯧쯧 사람들. 아직 그 빵 맛을 모르다니… 내가 만나면 빵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어야 겠군” 그러곤 루즈벨트는 엘리스가 접시에 담아준 옥수수 빵을 손으로 뜯어먹으면서 대통령 집무실 쪽으로 걸어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정원사며 일꾼들을 만나면 다정한 목소리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냈습니다. 하인들은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며 감격하곤 하였습니다.
하이크 후비라는 훗날 이렇게 말 했습니다. “대통령이 바뀐 그 2년 동안에 이렇게 기쁜 날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죠” 루즈벨트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가장 간단하고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방법을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즉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줌으로써 자신의 관심이 다름아닌 상대방에게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