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바람이 사납다. 가랑잎들이 먼 발치로 날려가고 있다. 제 뿌리 곁에 눕지 못하고 한참을 날아간다. 모태를 떠나기 싫은 아쉬움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일기가 영하로 치달으며 싸늘해 지는 풍경들이 겨울 전유물처럼 쓸쓸함을 더해간다. 해마다 겨울을 만나고 떠나 보내면서도 늘 그랬듯이 겨울 매마름을 절감하게 된다. 잡을 수 없는 세월이란 말이 겨울이면 부쩍 선명 해 진다. 잎들의 마지막 낙하의 절규는 겨울이 물러 날 때까지 이어진다. 잎새들의 마지막 모습이 고운 것만이 아닌 왠지 처절해 보이는 것도 겨울이 주는 나이 때문일 게다. 이렇듯 낙엽을 떨구고 나 목이 되듯 삶의 부분을 잃어가는 것이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란 생각이 밀려든다. 살아간다는 것이 매일 매일의 흔적이면서 또한 소멸 돼 가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시간시간을, 하루들을 잃어가고, 계절을, 한 해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 가는 게 당연하단 듯 받아 들였던 일상들을 이 겨울은 새로운 눈 뜨임으로 나를 이끈다.
생명으로 잉태되어 모태를 떠나고 세상을 만나고 어머니 품도 때가 되면 동생에게 내어주어 야 했고 세상 얼룩을 몰랐던 맑은 유년도 그리움으로 돌아서고 꿈 많던 여학생 시절도 젊음이 란 신기루에게 내어주었다. 서서히 세상을 알아가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안게 되고 자녀들에게 열정을 쏟으며 인생을 달려왔다. 삶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다는 것을 음미하게 되고 긴 노정 끄트머리에 당도한 이제 사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내며. 최소 한의 것 외엔 지니지 않는 가벼움으로 가랑잎처럼 가을 바람에 실려 다녀야 한다는 것이 겨울이 주는 연륜이었다. 어렸을 땐 얼른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들이 가진 능력과 앞서서 가고 있는 발자국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때론 어른들 만이 가진 무한 자유의 높은 한계로 부러움을 불러들였던 것 같다. 얼마 전 어르신이란 존칭을 받았던 날,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어른이란 단어가 불현듯 가슴을 파고 들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며 대접만 받는 것이 아닌 어른 다움을 짊어져야 한다는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가끔은 어른하기가 싫을 때가 있기도 했었고 잠깐씩은 어른이란 짐을 놓아두고 아이로 살고 싶은 적이 있었음도 감출 수 없음이다. 문득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는 말씀이다.
어른이란 더 많은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허전함도 상처도 두엄처럼 썩힐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어른 다움이며 어떤 동요나 떨림도 숨길 줄 아는 능숙한 삐에로 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성장의 이룸이 아니라 진행형 과정으로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것인데 이 사실을 어른이나 어른이라 불러주는 젊은이들 끼지도 잊고 있는 듯 하다. 쫓기기라도 하듯 한달음에 달려온 시간들 속에 놓아버린 것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허망함 앞에 새삼 많은 것을 유실했다는 생각을 앞질러 아름다움으로 주위에 머물러 있는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겨울이 전해 주는 연식이었다. 실책과 어수룩한 사람을 염려해 주는 따뜻한 이웃과 가족이 곁에 있기에 감사가 넘친다. 어차피 우리 인생도 나이테를 늘려 가기 위해 추운 계절을 지나야 하기에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 보노라면 나이 드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여유를 얻는다.
전국을 눈 폭풍으로 몰고가는 일기로 하여 황량하고 메마른, 적막하고 시린 겨울 소리와 고요한 겨울 시간 앞에 거대한 우주 속의 지구라는 푸른 별이 우리네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더 각별 해진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 내가 나 다워야 하는 까닭까지 묵묵히 지켜보듯 겨울은 나이테를 한 켜 더해주는 길목에서 서서히 퇴색 되듯 깊어 가고 있다. 이 겨울은 세상을 관망하며 기쁨을 모색하라는 지혜가 실린 이정표를 새롭 듯 옮겨 주고 떠나려 나 보다. 나이다운 성숙한 자유와 비움의 미학이 설정해 온 마지막 열정 마저도 품으라는 듯 여유와 넉넉함으로 이끌어 준다. 겨울이 전해주는 나이는 삶의 향기를 남기고 떠나라 일깨워준다. 나이만 들어버린 노친 네라 꾸짖지 않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