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수필] 슬픔의 교향곡이 흐를 때

지역뉴스 | | 2026-02-09 11:02:18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슬픔의 교향곡이 흐를 때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애틀랜타의 붉은 흙 위에서 어느덧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 이민자의 삶이라서 일까, 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메우려 애썼던 긴 여정이었다. 청춘은 생존을 위해 분주했고, 어느 시절엔 홍두깨처럼 느닷없이 들이닥친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어느새 노년에 들어서는 나이, 은퇴가 코앞이지만 나의 일상은 여전히 일터를 향한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삶을 즐기는 친구들이 가끔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이 치열한 현실 속에서도 나름의 풍요를 누려왔음을 인정한다. 남들처럼 넉넉지 못한 처지에서도 나름 나만의 풍요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결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유하지 못한 형편이 남긴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숨어든 나만의 은신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북적이는 모임이나 유명 관광지 대신, 어린 시절부터 익혀온 클래식의 선율과 정갈하게 닦인 문장들 속에서 생의 허기를 채웠다. 책 속의 사상, 오페라의 아리아, 발레무용수의 가냘픈 몸짓은 고단한 내 생활을 지탱해 준 안식처였다. 음악회에 머무는 시간을 지루해하거나 표 한 장의 값을 아까워하는 이들 사이에서, 홀로 공연장을 찾아가는 길은 늘 외로우면서도 고즈넉했다.

그런 내게 취향의 결이 꼭 닮은 친구가 생겼다. 이국땅에서 느지막한 나이에 생각의 주파수가 맞는 이를 만나는 것은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우리는 공연 표를 사기 위해 생활비를 아끼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했다. 비록 무대와 먼 뒤편 관람석에서 오페라 글래스를 통해 감상할지라도, 함께 숨 죽여 선율을 따라가고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곁에 있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요즘, 그토록 귀한 친구를 마주하는 일이 조심스럽고도 아프다. 친구는 지금 항암 치료로 사투를 벌이는 남편을 간병하고 있다. 야윈 그녀의 얼굴을 대할 때면 나는 암담하다. 무력감에 빠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녀의 곤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이미 암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환자로서 겪었던 막막한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양로원을 운영하며 삶의 마지막 끈을 놓는 노인들의 곁을 지켰던 시간들이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는 마중물이 되어준다. 간병의 여정 끝엔 필연적인 이별이 기다리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남는 것은 시린 후회뿐임을 짐작하기에 마음이 저릿하다.

가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나는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 대신, 오직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만 마음을 두라는 투박한 위로를 건넬 뿐이다. 예전처럼 음악과 문학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던 활기는 잠시 사라졌을지 모르나, 지금 이 적막한 공감 또한 우리가 공유해 온 예술의 연장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슬픔의 교향곡이 흐를 때는 그 선율이 다 지나갈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임을 안다.

문득 친구의 상황이 떠오를 때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겨본다. 그녀의 슬픔을 오롯이 담아낼 빈 그릇이 되기를 기도한다. 생애 가장 시린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친구가 스스로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훗날 이 고통의 시간을 돌아보며, 그 속에 머물렀던 아주 작은 온기 하나로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우울한 마음을 어루만질 낮은 선율을 찾아본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단순한 수명 연장 아닌 활력 있는 삶으로"
"단순한 수명 연장 아닌 활력 있는 삶으로"

텔로유스, '젊음 회복 프로그램' 소개 텔로유스(TeloYouth)의 폴 김(Paul Kim) 수석코치가 일상에서 반복되는 신체 변화를 점검할 수 있는 '10가지 노화 경고 신호'

애틀랜타 평통, 법무법인 성현 업무협약 체결
애틀랜타 평통, 법무법인 성현 업무협약 체결

법률지원 서비스 업무협약 법무법인 성현 최재웅 대표변호사는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삼우빌딩 2층에 위치한 법무법인 성현 사무실에서 민주평통 애틀랜타 협의회(회장 이경철)와 법률지

조지아주 성인 영어읽기 능력 전국 39위
조지아주 성인 영어읽기 능력 전국 39위

동남부 이웃 주들에도 뒤처져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조지아주는 성인 영어 읽기 숙련도 부문에서 전국 하위권에 머물렀다.PIAAC 조사는 52개 주와 미국영에 거주하

여권 빼앗고 협박에 폭력까지…이주농장노동자 착취 조지아 고용주 등  기소
여권 빼앗고 협박에 폭력까지…이주농장노동자 착취 조지아 고용주 등 기소

조지아 연방검찰 기소장 공개4년여 간 H-2A 프로그램 악용1천여명 멕시코 노동자 모집공포분위기 속 임대료도 챙겨 이주 농장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와 폭력,협박 혐의로 조지아 고용

홈디포 공동창업주 조지아 최고부자 등극
홈디포 공동창업주 조지아 최고부자 등극

▪포브스 전국 400대 부호 선정 발표블랭크, 자산132억달러…전국 99위 홈디포 공동창업자인 애서 블랭크(사진)가 2026년 조지아 최고부자에 올랐다.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최근 발

여론조사, 주지사는 잭슨, 연방상원은 오소프 우세
여론조사, 주지사는 잭슨, 연방상원은 오소프 우세

주지사, 잭슨 48% vs 바텀스 45%상원, 오소프 51% vs 콜린스 42% 11월 3일 중간선거를 7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 억만장자 릭

서양화가 김인순 개인전, ‘P Fine Art’서 개최
서양화가 김인순 개인전, ‘P Fine Art’서 개최

‘생명의 리듬과 심상의 산’ 조명내면의 생명력 담은 회화 선보여서양화가 김인순 작가의 개인전이 9월 15일부터 10월 9일까지 스와니에 위치한 'P Fine Art' 갤러리에서 개

가을은 축제의 계절…주말  스와니∙코리언 페스티벌
가을은 축제의 계절…주말 스와니∙코리언 페스티벌

내주엔 둘루스 페스티벌 스와니의 대표적 가을축제인 스와니 페스티벌이  주말인 19일과 20일 타운센터 파크에서 열린다.올해로 42번째를 맞는 스와니 축제는 ‘Once Upon a

로열트러스트은행 둘루스지점 그랜드 오픈
로열트러스트은행 둘루스지점 그랜드 오픈

CD 프로모션 진행 중 존스크릭에 본사를 둔 로열트러스트은행(행장 마이클 오닐)이 16일 둘루스에 두 번째 풀서비스 지점을 개설하고 그랜드 오프닝 및 리본 커팅 행사를 개최했다.이

〈부고〉 동포언론인 서승건 기자 별세
〈부고〉 동포언론인 서승건 기자 별세

애틀랜타 및 동남부에서 동포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서승건 기자가 16일 오전 에모리대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4세.고인은 코아타임스, 재외동포신문 등에서 기자와 칼럼니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