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DEI 폐기’ 기조, 문화예술계 확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의 대표적 공연장인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케네디센터) 이사들을 해고하고 자신을 이사장으로 ‘셀프’ 선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폐기 기조가 문화예술계로 확대된 셈이다.
CBS뉴스·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케네디센터 이사회는 지난 12일 만장일치로 트럼프 대통령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케네디센터 이사장이 되는 것은 큰 영광”이라며 “우리는 케네디센터를 매우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케네디센터는 케네디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1971년 설립된 유서 깊은 공연장이다.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의 주 공연장이기도 한 이곳은 예술인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케네디센터를 운영하는 이사회 이사진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이사회 구성은 여야가 균형을 이루는 게 오랜 관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도 무시하고 이사회를 측근들로 갈아치웠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 18명과 이사장인 데이빗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수지 와일스 대통령 비서실장, JD밴스 부통령의 아내 우샤 밴스 등을 새로 채워넣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이사회를 앞세워 기어이 이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WP는 “현직 대통령이 케네디센터에서 전임 이사를 해임하고 자신이 신임 의장을 맡은 첫 사례”라고 꼬집었다.
케네디센터 이사회는 이날 2014년부터 센터를 이끌어 온 데보라 러터 센터장도 해임하고, 리처드 그리넬 북한·베네수엘라 특별임무대사를 임시 센터장에 앉혔다. 그리넬 대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주독일 대사를 지낸,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케네디센터가 무대에 올린 공연들을 문제 삼았다. 최근에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케네디센터가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드래그쇼(여장 남자 공연)를 선보인 것을 비난하며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적 의제를 적대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연예술까지 통제·검열하겠다고 나서면서 ‘문화전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케네디센터에서 활동해 온 예술인들은 반발했다. 미국 최고의 디바로 꼽히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은 케네디센터 예술 고문직에서 자진 사임했다. 가수이자 작곡가인 벤 폴드도 워싱턴 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 고문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