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민감한 장소’ 단속 확대에 제동
퀘이커·시크·침례교 종교시설 금지명령 유지
“단속 공포로 예배 참석 감소…종교 자유 침해”
본안소송 계속… 종교시설 단속 정책 향방 주목
트럼프 행정부가 교회와 사원 등 종교시설에서도 이민단속과 체포를 허용하도록 한 정책에 대해 연방 항소법원이 제동을 건 하급심 결정을 유지했다. 법원은 종교시설에서의 이민단속 위협이 이민자들의 예배 참석을 위축시키고 종교단체의 공동체 예배 활동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CBS뉴스에 따르면 제4연방순회항소법원은 18일 퀘이커교와 시크교, 협동침례교 소속 종교시설에 대해 국토안보부(DHS)의 이민단속 정책 적용을 금지한 연방 지방법원의 예비금지 명령을 만장일치로 유지했다.
항소법원 판사 3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지난해 지방법원이 내린 예비금지 명령이 계속 효력을 갖는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소송을 제기한 퀘이커교, 시크교 및 협동침례교 소속 종교시설에서 2025년 도입한 새로운 이민단속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시행됐던 이른바 ‘민감한 장소’ 보호 정책을 폐기하면서 시작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교회 등 종교시설과 학교, 병원과 같은 보호 대상 장소 안이나 인근에서 이민당국이 단속 활동을 벌이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이 같은 제한을 철회하고 이민단속 요원들이 민감한 장소에서 단속을 실시할지를 판단할 때 재량권과 ‘건전한 상식’을 사용하도록 하는 새로운 지침을 내놓았다.
이에 약 75만명의 침례교인을 대표하는 협동침례교와 약 3만명의 시크교인을 섬기는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새크라멘토의 구르드와라 사히브, 그리고 6개 퀘이커교 모임이 지난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종교단체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연방 종교자유회복법과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종교시설에서 이민단속이 이뤄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민자들의 예배와 종교활동 참여가 위축되고 실제 참석자 수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항소법원은 종교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를 대표해 판결문을 작성한 바버라 밀라노 키넌 판사는 DHS의 새로운 이민단속 정책이 원고들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키넌 판사는 새로운 지침이 “교인들에게 위축 효과를 일으키고 있으며 협동침례교와 시크교 원고들의 경우 이미 예배 참석자 감소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또 예배 참석자 감소와 종교시설에서 이민단속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은 “모든 원고가 공동체 예배를 통해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이미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에는 키넌 판사를 비롯해 G. 스티븐 에이지, 파멜라 해리스 판사가 참여했으며 3명 모두 같은 의견을 냈다. 키넌과 해리스 판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에이지 판사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각각 임명했다.
항소법원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새 정책을 발표하면서 내놓았던 DHS의 공식 입장도 주목했다. DHS 대변인은 지난해 1월 정책 변경 당시 새 지침에 따라 “범죄자들이 체포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미국의 학교와 교회에 숨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키넌 판사는 이 발언이 원고 종교시설에서 실제 이민단속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협이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키넌 판사는 “이민자 신자들을 환영하고 이민자 커뮤니티 내부 또는 인근에 시설을 두고 있는 원고들에게 DHS가 정책 변경의 근거를 강조하며 내놓은 발언은 이들의 종교시설에서 이민단속이 이뤄질 위협이 현실적이고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시설에서 이민단속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짐으로써 원고들이 자신들의 여러 종교적 신념을 위반하도록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증거를 통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종교단체들은 이민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예배와 공동체 활동에 받아들이는 것이 종교적 신념의 중요한 부분인데, 이민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자들이 교회나 사원을 찾지 않는 상황 자체가 종교활동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교회와 학교, 병원 등에서 이민단속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왔다. 과거 연방정부는 이 같은 시설에서 무분별한 이민단속이 이뤄질 경우 불법체류 신분의 주민들이 체포를 우려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병원 치료를 피하고 종교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민감한 장소’에 대한 단속을 제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기존 정책을 철회하면서 학교나 교회 같은 장소가 이민법 집행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에 종교단체들은 정부가 실제 교회나 사원에서 체포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이민단속 요원이 나타날 수 있다는 두려움만으로도 신자들의 종교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