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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엄지 손가락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10-19 19: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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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지 손가락을 살짝 베였다. 피가 흐른다. 지혈을 시킨 뒤 약을 바르고 밴드를 두르고 고무 커버를 씌운다. 손을 물에 마음대로 담글 수 있도록. 새살이 돋아나려면 두어 주간은 넉넉히 기다려야할 것 같다. 식사 준비를 할때도, 레인지를 닦을 때도 설겆이를 할 때도 엄지 손가락의 노고와 필요성과 그에 따른 불편이 여실히 드러난다. 미안해, 주의력이 부족한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아프게해서 정말 미안해 쾌유를 빌고 손가락을 감싸며 일렁이는 사념에 잠겨본다. 일상의 흐름이 밝고 세상에 대해 객관적인 날에는 손가락 하나 상처난 것 쯤이야 감정 과잉으로 밀어붙이겠지만 오늘은 왠지 손가락의 상처가 서글퍼 보이거니와 나이듦의 잔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일상을 다듬어내는 얕은 물가에서는 잘강거리는 여린 파도가 발목을 적실뿐이지만, 생의 깊숙한 물 밑으로 잠기려면 낮은 목소리를 내는 법을, 몸을 낮추는 법도 함께 익혀가야할 것인데 빗장 풀리듯 손쓸 시간 없이 나이가 먹어버렸다. 녹슬어가려는 마음의 산화를 깨워가며 게으름과 나태의 길로 빠져들어서는 아니될 터이다. 가정에서나 공동체에서의 일원으로 살아내려면 상처입은 엄지손가락처럼 욱신거리는 존재는 되지말아야지 하는 생각의 구상이 또렷해진다.  

 

예로 부터 우리 민족은 자식을 손가락으로 비유해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했다. 밤새 욱신대는 손가락을 어찌 자식과 비유하랴. 자식은 상처난 엄지 손가락보다 더 크고 큰 아픔이다. 어쩌면 우주보다 더큰 아픔으로 노심초사로 애태우며 근심에 싸이기도 하고 염려로 애를 태우기도 하며 고심과 초려로 마음을 조여왔지만 이 아픔들을 아픔인줄 모르고 세월을 건너왔다. 자식이 아프면 그 아픔은 몇 만배로 부풀어 오른다. 자식이 슬프하거나 힘들어하면 밤잠을 설치며 안절부절 만사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세상 부모들의 사랑이다. 유난히 성실하고 다사로운 딸네들이라서 부모를 힘들게 했던 기억을 찾아내기조차 아득한 우리 아이들이었지만, 누군가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부모라는 자리는 고슴도치로 변신하게 된다. 자식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면 부모들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 밴드를 두른 엄지손가락 상처에 비하랴. 이리저리 걸리적거리는 엄지 손가락이 불편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아픈 것이 자식이다. 나 역시 내 부모님의 자식이었기에 나도 아픈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마음쓰이게 했으며 많은 상처를 안겨드렸을까. 얼마큼 아픈 손가락이었을까. 착하게 자라준 내 아이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엄지손가락의 상처로하여 남겨질 흔적에까지 심상이 이끌려간다. 버겁고 무거웠던 긴 여정에서 이제사 일손을 놓으며 소슬한 뒤안길로 접어든 노인네라서 기억영역이 줄어들지 않기를 소원드리게 된다. 오늘이 어제로 가는 길목을 지나가듯 내가 내려야할 정거장은 어디 쯤일까. 세상을 떠도는 인정도, 피할 수 없는 대인관계도, 무덤으로 가는 날 까지 무시할 수 없는 경제까지도, 더는 인생을 위협하지않을 인플레 풍년이란 말이 무색해지면 좋으련만. 운전에 악기연주, 운동하고 씻고 화장하고 옷입고, 빨래며 젓가락질에 요리까지 손이 해내는 수 많은 일도 다섯 손가락의 일사분란한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홀로 손가락이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적음같이 한 사람이 큰 목소리로 자기 주장만 한다면 건강한 가정, 공동체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서로의 어우러짐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절실하고 요긴한 요구임을 엄지손가락이 일께워준다.  

 

외 홀로 행복할 순 없음이다. 행복도 손가락처럼 주변과 맞물려서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공유되는 공간을 인정하며 느끼며 즐기기까지 한다면 보이지않는 아름다움까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을 남은 날들 중에 첫 날로 삼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흔적이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램해보지만 찬란한 오늘도 어제 속으로 묻혀갈 것이다. 오직 한 길로 난 발자욱을 고수하며 간결과 조신으로  걸어왔기에 내면의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고 싶었던 소탈한 꿈이 이 가을처럼 영글어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위로가 눈물겹다. 상처난 엄지손가락의 교훈도 알뜰하고 눈물겹다. 황혼녘의 눈물이 가랑비처럼 살며시 젖어드는 읊조림으로 밀려든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헤어짐을 준비하란다. 바람에 몸을 맡끼란다. 어느 하루도 바람이 아닌 날들이 없지않았냐며. 서녘 하늘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신실한 구름 같은 

남은 날들이 되어지기를 바램하는 뒷모습이 더는 초라하지 않았으면. 숨가쁘기도 했지만 본분에 어긋나지 않으려 노심초사로 걸어온 여정의 끝자락에 노을이 비끼고 있다. 엄지 손가락의 수난이 아픔이긴 하지만 잊고 있었던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오늘 보다 따뜻한, 오늘 보다 나은, 오늘 보다 밝은 내일을 믿음하며 은은한 시편 찬양이 영원히 머물곳을 향하여 남은 날을 걸어가리라.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올리며. 추켜세운 엄지손가락은 인간미의 정수를 표현하는 방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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