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민 목사
12월 29일(일요일), 미국 제39대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 (Jimmy Carter) 전 대통령이 별세하였다.
고인이 되신 카터 대통령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며, 하나님 나라에서 영면하시기를 기도한다.
카터 대통령은 애틀랜타 남쪽 플레인즈에서 아버지 얼 카터와 어머니 릴리언 여사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엄격한 남부 농장주인이었으며, 어머니 릴리언 여사는 간호원이었다. 그 덕으로 카터는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병원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어려서 부터 부모를 따라 마을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또래의 흑인들과 거리감없이 어린시절을 보냈다.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남부임에도 불구하고 편견없이 흑인들과 같이 생활을 했다.
고 카터 대통령은 조지아공과대학(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일명 조지아텍)에 다니다가 버지니아주 아나폴리스 미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해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부친의 별세로 고향으로 돌아와 농장일을 보다가 정계에 입문, 민주당 주 상원의원, 주지사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임기를 마치고, 그 후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가 되고 결국 3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그 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어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철학이다. 그는 정직한 대통령이 되어 거짓말과 권모술수가 통행하는 워싱턴 정가를 정의로운 분위기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그의 정치철학은 미국 윤리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신학 사상, 특히 “사랑과 정의(Love and Justice)” 에 바탕을 두었다 할 수 있다. 그의 연설문이나, 심지어 공직 취임식사에도 니버가 한 말 “정치의 목적은 사회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를 자주 인용한 것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니버사상영향에 의한 정의실현 일환으로서 인권을 그의 정치철학의 기조로 삼았다. 전 세계 국가에서 벌어지는 인간에 대한 탄압, 권리박탈 같은 전 근대 전제적 통치를 하는 국가에 대해 시정을 촉구하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에 힘을 썼다. 1979년 6월에 카터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유신독재정치로 인해 시끄러웠던 정부에 인권문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재임 기간에도 놀라운 업적, 즉 견원지간이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통해 외교관계를 맺게 했다. 그 후 이 역사적 협정은 평화의 모델 및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후 고 카터 대통령은 연임을 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가에 정직과 정의 하나로 무기삼아 정치하겠다 하니 그게 되겠는가. 이런 저런 일로 두세가지 정책 실패로 인하여 연임하지 못하고 단임으로 퇴임하였는데, 그때부터 그의 진면목이 나오기 시작했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때보다 더 활발히 사회질서나, 인권개선, 저변층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일에 헌신했다. 중동의 평화를 가져오게 한 공로도 있었지만, 북한에 의한 핵위기론이 대두되자 1994년 6월 방북, 핵확산 중단 중재를하기도 했고, 나아가 세계 분쟁이 있는 곳엔 어디든 가서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을했다.
또한 무주택자를 위한 해비타트에 참여하여 가난한 자들이 집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질병퇴치, 인권, 평등같은 일에도 관심을 보이고, 직접 나서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세계평화를 이루는 일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무능한 대통령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편견에 휩싸여 사는 삶의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어 가치있는 것에 대한 평가능력을 갖추지 못해 비난이나 부정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아닌, 인류에 어떤 공헌을 하였는가에 평가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어쨌든, 그는 모든 세계인들이 존경하는 삶을 살았다 할 수 있다.
다시한번, 위대한 인물을 잃은 것에 대한 카터 대통령의 별세에 정중히 애도를 표한다. 그분의 업적, 인류에 끼친 공로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오래 오래 남아있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