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지표 중 에오로졸 농도 제외 7개 ‘위험 구역’ 진입
지구가 무너지면 인간도 죽는다. 인류 생존의 전제는 건강한 지구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지구의 ‘건강 상태’를 측정했더니 8개 지표 중 7개가 이미 ‘위험 구역’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지구 시스템이 한계를 넘어서면 자연의 일부인 인류도 절멸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다.
워싱턴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등의 연구진이 모인 지구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요한 록스트룀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소장이 2009년 처음 제시한 ‘지구 위험 한계선’ 개념을 8개 지표로 정량화해 평가한 결과다.
위원회는 기후와 생물다양성, 물, 토지, 대기, 자연생태계 등에서 △기온 상승 △지표수 △지하수 △미개발 자연생태계 △도시·농경지 비율 △질소 △인 △에어로졸 등 8개 지표를 뽑아 현 상태를 측정했다. 이 중 에어로졸 오염물질 농도를 제외한 7개가 모두 ‘안전하고 적절한 경계’를 넘어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 구역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연구진은 안전하고 적절한 경계 내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섭씨 1.0도로 봤다. 그러나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올랐다. 또 지표면의 50~60%는 온전한 자연 생태계로 덮여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45~50%에 그쳤다. 하천 등 지표수 흐름이 20% 이상 인위적으로 막히면 안 되지만, 지구상 3분의 1 이상(34%)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충되는 속도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빨라야 하는 지하수 상황도 열악했다.
특히 문제는 지구 시스템이 상호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지구 시스템 안의 이들 지표가 하나라도 임계점을 벗어나면, 도미노가 무너지듯 연쇄 효과로 결국엔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얘기다. 록스트룀 소장은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가뭄, 홍수뿐 아니라 식량 안보 저하, 수질 악화, 지하수 고갈, 생계 여건 악화 등이 초래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다른 지표들도 경계 내에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지구는 약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선 석탄·석유·천연가스 사용, 토지·물을 다루는 방식 등에서 전지구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번 보고서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후변화나 생물다양성 감소가 지구 자체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춰 온 기존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류에 끼치는 피해를 측정했다”고 평가했다. 생태 지표뿐 아니라 국가, 인종, 성별, 세대 등과 관련한 ‘정의’ 항목도 추가해 과학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 그에 따른 피해를 따져보면 ‘불공정’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이유다.
실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의 탄소 배출량은 가장 가난한 50%의 두 배에 달한다. 보고서 공동저자인 슈메이 바이 호주국립대 교수는 “이 연구는 인간의 필요와 영향에 숫자를 매김으로써, 지구 보호가 지역사회나 경제와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보여 준다”고 FT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