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 간부였던 올드리치 에임스는 1980년대 초 불륜을 저질러 이혼한 뒤 위자료와 낭비벽이 심한 새 여인과의 생활비 등으로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된다. 마침 CIA 대소련 방첩 과장으로 임명된 뒤 1985년 주미 소련대사관으로 들어가 미국 스파이로 활동하는 소련 측 요원 명단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에임스는 9년 동안 소련 정보기관 KGB와 접촉하면서 거액의 돈을 받고 25명 이상의 소련 내 미국 스파이 명단과 100건이 넘는 CIA의 대소련 공작 기밀문서를 넘겼다. 이로 인해 미국 협조자와 요원 10여 명이 소련 당국에 체포돼 처형 당했다.
CIA는 대소련 첩보 작전이 잇따라 실패하자 기관 내 이중 스파이가 있음을 감지하고 FBI와 함께 방첩팀을 구성했다. 방첩팀은 결국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에임스의 130만 달러 계좌를 찾아내고 1994년 전모를 밝혀낸다. 당시 CIA는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로 위기에 처했다.
30년 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에임스 사건은 국가정보원 누리집에도 소개됐다. 에임스는 당시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에임스 사건은 2001년 9·11 사태 뒤 미국이 기존 16개 정보기관을 총괄 지휘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1998년 영화 ‘올드리치 에임스: 내부의 배신자’ 등으로 다뤄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에임스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터졌다. 대북·해외 첩보 및 공작 업무를 맡는 국군 정보사령부 군무원이 우리 군의 해외 요원 명단 등 공작 기밀 수천 건을 북한 측에 유출한 혐의로 적발된 것이다. 간첩 행위인지, 해킹으로 인한 것인지 심층 조사를 해야 하겠지만 최악의 보안 사고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도 치밀하지 못한 활동으로 우리 측에 협조하던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최근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냉전과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은 정보 보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안보·산업 관련 정보들이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정보 관련 기관들이 기강을 다잡고 시스템을 완벽하게 정비해야 한다.
<고광본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