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메멘토 모리’ 라는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낱말이다. 인생의 무상함, 오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경고가 담겨있는,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메세지다. 죽음을 예측하고 있으면서도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내일은 내일로 항상 앞서가고, 죽음을 통해 생명의 발견이 순환되고 있다. 태어나서 세상을 방문하고 때가 되면 세상 밖으로 사라진다. 예고 없는 노정이라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다. 늘 든든한 오빠 같이 의지할 수 있었던 두 살 터울 남동생이었는데 갑자기 천국 이사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황망하기 이를 데 없이 서둘러 떠날 줄 몰랐다. 청년보다 활기차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는 말을 절감하게 해주었는데, 그토록 의리 있고 유머를 잃지 않는 믿음직한 모습으로 마지막 누나를 만나러 왔었나 보다. 꿈 속에서도 그리 쉽게 등장하진 않았었는데, 새벽 녘 잠에서 깨어날 무렵, 꿈 속에서도 평소처럼 편안한 웃음을 머금고 말없이 웃기만 했던 모습이 마음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늦은 오후 해넘이 무렵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꿈이란 주변 생로병사를 감지하게 되는 장치라는 말이 흥미로웠었는데 이젠 경험할 것은 제대로 체험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꿈에서 깨어 나면서 요동하는 마음을 접으려고 몸을 씻고 단정한 자세로 묵념을 드리고 마치 동생이 곁에 있는 것처럼 못다 나눈 사연들을 독백처럼 긴 시간 마음을 나누었다. 동생이 남긴 흔적들이 옹달샘처럼 쉼 없이 솟아 오른다. 죽음이란 삶과 분리된 특별한 장르를 정비하듯 따로 마련한 것이 아닌 일상 삶 속에 순환하면서 흐르고 있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한 생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세상을 떠난다는 현상이 진정 영원한 작별을 칭함이 아닌 것임을 익히 믿음으로 인정하면서도 손에 맥이 빠지면서 남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곧게 뻗은 대로도, 구불구불 정처 없는 어지러운 길도 보인다. 동생을 먼저 떠나 보낸 남은 내 길도 이미 저물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마치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애틋함이 새록새록 절감으로 굳어진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살아온 뒷모습을 남기기 때문일 게다. 죽음을 이렇듯 열심히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죽음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가 통과해야 하는 자연 현상으로 피할 수 없는 갈림길의 길목이다. 죽음이란 과정이 있기에 살아있음이 더 값질 수 있음이라서 남은 날들을 소중하게 갈무리해야 하리라. 동기의 죽음을 접하면서 영혼이란 단어가 밀착해서 떠오른다.
영혼이란 단어와는 친숙하게 지내왔었다. 물질적 풍요를 소유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영혼은 육체로부터 독립적인 정신체로 존재한다. 살아있는 동안 생명과 정신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육체와 정신을 관장하는 인격적인 실체이자 비물질적 존재이다. 성격, 인격, 지혜, 의지, 감정을 포함한 살아있게 하는 모든 것의 정의로 육체에 깃 들어 마음 작용을 맡아오면서 생명을 부여해온 불멸 존재성으로 일컬어 왔다. 육신 호흡이 멈춰버리면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동생과 함께 유년을 지내오는 동안에는 푸르고 광활한 초원만 있을 줄 알았다. 나이 들고 철이 들면서 무지개가 뜨기도 하고 가끔씩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기도 했지만 구름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햇살이 얼마나 황홀했든지. 생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희망 불빛을 놓치지 않으며 앞만 보자고 다짐하기도 했었고 유년을 떠올리며 그 시간으로 돌아간 적도 엊그제 같은데.
내동생도 그랬을 것 같다. 꿈도 기쁨도 소망도 그리움도 한순간 떠나 보냈을 것이다. 성경에 “죽음이 너희에게 도적 같이 오리라”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생의 불가사의를 깊이 새기도록 남은 누나에게 소중한 메세지로 남겨 주고 떠났기에 더욱 값지고 고귀한 떠남이라는 생각에 머물게 된다. 남은 날 동안의 첫날인 오늘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집중해야 할 일이다. 남은 날들을 지혜롭게 다스리며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남기며 감사를 잊지 않는 삶을 견지해 가는 것이 먼저 떠난 동생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살아온 삶과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어쩌면 뒤돌아 보는 일이 겸허함 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집착이나 회환의 늪에는 끌려들지 않아야 할 일이다. 회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회환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살아온 날들은 다 그만큼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 죽음이 순환되고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의 과정을 매듭 지으며 살아온 날들의 아름다움을 후광으로 남기게 된다. 동생이 남겨준 헤어짐의 참뜻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붕괴나 파국이 아닌 삶의 순환이었다. 이 순환의 흐름에 실려 사회 일원으로, 할아버지로, 아빠로 집안 장손으로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 놓으시고 평안의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절 함으로 간구드리게 된다. 이른 새벽 숲에서 미동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처럼 공허하고 아득한 그리움이 번져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