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풀뿌리와 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고 송락과 풀옷으로 그 몸을 달래다
산야에 깃드는 새와 구름을 벗을 삼고
높은 산 깊은 곳에서 남은 세월을 보내리라 (야윤 스님 시, 풀옷)
숲 사이 시퍼런 하늘이 마치 깊은 우물처럼 맑다. 일지암을 지었다는 초의 선사는 평생 풀옷을 입고 살았다한다. 두륜산 일지암은 내고향 강진에서 그리 멀지 않는 두륜산 계곡에 초의 선사가 풀옷을 입고 일지암에서 한생을 사셨다.
다산 초당 기암 절벽 석문산 계곡과 두륜산에 진달래가 피면 옷산이 연분홍 치맛폭에 꽃으로 장관이다.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해남 대흥사 옆 두륜산 일지암 풀옷을 입은 작은 암자에 풀 뿌리와 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는 가난한 서민의 가슴에 일지암은 초의 선사가 자신이 지은 암자로 중국의 걸인 성자 한산의 시… 내항상 생각하노니 저 뱁새도 한 몸 쉬기 한 가지에 있구나… 연유한다. 요즘 화려한 절에 비하면 초의 선사의 풀옷입은 일지암의 청백 가풍이 아닌가싶다. 내 어린 시절 일지암을 지나 해남 대흥사로 소풍을 가는 것이 꿈같은 나들이었다. 어머니가 싸주신 전대에 김밥, 과일을 둘러메고 주적산 계곡을 오르면서 얼마나 감격했던가… 초의 선사는 시, 서, 화, 다에 일가를 이루신 실학 선승 다산 정약용의 제자로 시와 그림에 뛰어난 선승으로 추사 김정희와 다우가 되어 난세를 살면서 다산 초당에 모여 자신들의 삶을 활짝 꽃피우게 한 그 분의 행적이 눈부시다. 추사 김정희와 다우가 되어 눈밝은 그들의 만남은 한국 화단에 꽃을 피우게 하였고 풀옷입은 일지암은 후에 남종화 한국 화단의 산실이 되었다. 세월 속에 누가 살다간 곳이냐는 그 혼의 흔적을 남긴다. 우리 동네에 소치가 살다갔다는 옛 얘기를 나의 아버지가 가끔 하셨다. 가난한 예술가에게 사셨다는 소치의 8쪽 병풍을 어린 내게도 보여주셨다. 내가 그림을 좋아한 것도 내 고향에 남기고 간 옛 선비들이 뿌리고 간 예술의 혼이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옛 선비들의 인간의 욕망을 씻고 순수한 마음의 경계에 이르는 길 풍류의 멋이 오늘 다시 그립다. 가끔은 세상 밖 멀리 떠도는 순수한 마음의 경지 우주 속을 헤매며 어린 왕자처럼 무한한 정신적 희열과 감동으로 살 수 있다면 우주 속 별들의 세계 속을 헤매는 그 희열, 숭고한 정신세계 풀옷입고 산야에 깃드는 새와 흰 구름 벗삼아 바람이 머물다간 깊은 산골에 시퍼런 하늘이나 가득 품고 살다 가고 싶다.
아아 세상은 너무 재미 없어 구만리 흰 구름 휘감고 살고 싶어라
가끔은 해지는 저녁노을 너 한잔 나 한잔 술잔을 나누며
정말 좋은 세상을 살고 싶어라
온 우주의 별밭을 헤매며
밤톨만한 지구별을 내려다 보며
한바탕 너털 웃음같은 인생길
한치의 미련둘것 없다
천지는 내 가슴 한 우주라
경계도 없고 우주 속에 그 작은 길 모퉁이
술병 말랐다고 그누구의 비웃음 살까봐
아서라 ! 이 풍진 세상이란
하룻밤 한통속 꿈이 아니더냐
(시, 시우, 박경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