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좋은 것을 주거나 아름다운 것을 받고 사는 것이다. 날마다 계속 좋은 것을 주고 아름다운 것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서로 주고받을 때 주어서 기쁘고 받아서 행복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상대방에게 나쁜 것을 주는 가해자가 되고, 상대방으로부터 나쁜 것을 받는 피해자가 되는 그런 상황이 생기게 된다. 좋은 것을 준다고 주었는데 나쁜 것을 줄 때가 있고, 또 좋은 것을 받고 싶었는데 나쁜 것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대화나 협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대화나 협의나 이해가 꽉 막혀서 해결되지 않고 갈등과 대립의 상태로 머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어떤 사람에게는 가해자 액자(Frame)를 들고 있고 어떤 사람은 피해자 상자(Box)를 들고 있을 때 보이는 현상이다.
가해자는 범죄행위를 가한 사람을 말하지만 좀 더 설명하자면 지식이나 힘이나 권력이나 재물이나 지위로 다른 사람을 위험이나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을 가르쳐 가해자라고 한다. 가해자는 때로는 차별, 무시, 부당대우, 폭행, 폭언, 결별, 사기 등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난 범죄의 테두리 안에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가해의 사건이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면 충분히 사람으로서 실수나 연약함의 이유로 용서하거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되거나 어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의 가해의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그런 행동을 가해자 액자 또는 가해자 프레임이라고 말한다.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구타하거나 인사를 받지 않거나 동등한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결국 피해를 받은 사람에 대하여 어떤 너그러움과 배려가 계속 진행될 때 그런 사람을 가해자 프레임에 묶여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양치는 소년이 계속 거짓말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동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가해자 프레임의 모습이다. 가해자 프레임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도 힘들고 또 다른 사람도 힘들게 만들게 된다. 이 사람은 빨리 그 프레임, 액자를 부수어야 한다.
가해자 프레임에 갇혀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피해자 상자(Box)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인생이 부모이든 친구이든 다른 어떤 사람들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의 상자에 갇혀서 불평, 원망, 시기, 질투, 다툼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잊어버려도 되는 일들을 그간 지나오면서 잊어야 하고, 넘어가야 할 일들을 피해의 상자(Box) 안에 보관했다가 겨울 김장김치를 꺼내 먹듯이 계속 되뇌며 그 일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하면 사람을 멀리하고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지나치면 피해망상의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된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유도 이런 피해자 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립보서2:14-15)
우리는 때로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될 때는 그 가해가 부주의나 실수로 단 한번의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에게 큰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이해와 관용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상호소통의 관계들이 있다면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더라도 반갑게 악수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김범수 목사 /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