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LA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잠시 이목을 끌었던 ‘살 빼는 약’이 있었다. 먹었더니 불과 2주여 만에 10파운드 이상 빠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얼굴이 홀쭉해져 있었다. 큰 일 낼 제품이었다. 의학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당장 끊어라”고 했다. 살 빼는 약이 아니라, 물 빼는 약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대략 50~75%가 수분이라고 한다. 연령, 몸집, 신진대사, 활동량 등이 수분 비중의 차이를 결정짓는 요소로, 인체의 평균 60%는 물이라는 것이 공통된 이야기다.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뇌의 90%, 혈액의 80% 이상, 근육과 피부는 70% 내외, 뼈도 20% 이상이 수분이라고 한다. 몸 속의 모든 세포에 물이 고루 분포돼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 제품이라고 나온 이 ‘약’은 몸 속의 수분을 좍좍 빼내는 기능을 했다. 물만 마셔도 도로 살이 찌게 된다. 탈수 증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돌팔이가 만들었고, 멋모른 채 사 먹고 살이 빠졌다며 좋아하는 어리석은 소비자가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비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만은 이른바 성인병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은 물론, 허리 통증을 호소해도 우선 “살 빼고 배 넣으세요”라는 충고를 듣는다. 남녀 불문하고 살을 빼면 “전 보다 좋아 보여요”라는 인사말을 듣는다. 살이 빠져 걱정이라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찌는 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지난 5년새 미국의 비만치료나 예방을 위한 처방약 소비가 40배 늘었다. 엄청난 증가세라고 할 수 있다. 다이어트는 미국뿐 아니라 이제 웬만큼 사는 나라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가 됐다.
주류사회 매체에서 오젬픽(Ozempic) 광고를 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원래 당뇨 치료제로 지난 2017년 연방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았다. 체중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뇨 약이 비만 치료제로 변신했다.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구하기 힘든 귀한 몸이 됐다. 한국에서도 임상 실험결과 이 계열(세마클루타이드) 약은 동아시아 인들의 비만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외 유명 의학 학술지에도 발표됐다. 한국 일부 계층에서도 이 약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이 약을 출시한 덴마크 제약사는 지난 2021년 위고비(Wegoby)라는 비만 치료제를 내놨다. 리벨수스(Rybelsus)도 이 회사 약품이다. 블루 오션을 놓칠 수 있나? 미국 제약사에서는 트룰리시티(Trulicity), 마온제로(Mounjaro)라는 유사 효과를 가진 비만 치료제가 잇달아 나왔다. 이런 약이 비만 치료에 쓰이는 약학 작용을 설명하면 복잡하게 들릴 수 있으나 원리는 한 마디로 포만감을 높여 식욕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런 약은 심장병 예방에도 좋다는 이유로 처방되기도 한다. 심장질환도 비만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뇨 치료제가 비만, 심장병을 위해 처방되는 것은 신약 승인 당시 용도와는 다르다. 이런 것을 오프-레이블(off-label) 처방이라고 하는데, 합법이며 미국 의사들이 내는 처방전의 20%는 오프-레이블이라고 한다. 심장병 약이었던 바이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 심지어 고산병 예방용으로 처방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꿩 잡는 게 매’인 것이다.
이 덴마크 제약사(Novo Nordisk)와 미국 제약사(Eli Lilly)는 이들 비만 치료제 덕에 각각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 가치의 제약사로 부상했다. 이런 약은 부작용이 없을까? 부작용을 주장하는 소송 수 십 건이 제기돼 있다. 필라델피아 연방법원이 곧 심리에 들어간다. 원고들은 이 약으로 인한 위장 기능장애, 장 폐쇄, 췌장염 등을 주장한다. 심리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