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에서 보수진영이 대패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미국의 민주당은 영국의 총선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지난 2016년 6월 영국에서 치러진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급속히 힘을 키워가는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가 2016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총선 전야에 런던을 방문한 필자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 민주국가에서 정치가 움직이는 방향을 포착했다. 올 가을, 잔뜩 기세가 오른 트럼프와 맞붙을 민주당은 영국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국에서 쏟아져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약속이라도 한 듯 집권당인 보수당이 재앙 수준의 참패를 눈앞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한 여론조사는 노동당이 (토리당으로 알려진) 보수당을 21포인트 차로 완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해당 여론조사 기관은 자체 분석을 바탕으로 노동당이 (전체 하원 의석 650석 가운데) 500석 이상을 차지하고, 보수당은 간신히 50석을 건지는데 그칠 것이라는 점괘를 내놓았다.
이같은 예측이 적중한다면 보수당은 1834년에 창당한 이후 최소 의석을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국 내각의 각료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의 선거구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리시 수낵 역시 자신의 텃밭에서 패한 첫 번째 현직 총리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자료에 의존한 선거예측 모델은 노동당이 이처럼 심한 굴욕을 당하진 않겠지만 완패를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았다.
지난 2019년에 치러진 영국 총선 결과와 대비하면 노동당의 추락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해 선거에서 노동당은 365석을 차지하며 마거릿 대처 집권기 이후 최대 의석을 확보한데 비해 노동당은 1935년 이래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다.
여론조사가 일제히 보수당의 참패를 점치는 이유가 무얼까? 전 토리당소속 정치인이자 저자인 로리 스튜아트는 지난 10년 사이에 보수당이 ‘진중함’이라는 당의 가장 보배로운 특성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노동당은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지만 우유부단하고, 무모하며 종종 무능하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보수당은 강인하고, 심장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냉정하지만 일을 잘 한다는 게 중론이다. 보수당에 대한 이런 평가는 보리스 존슨과 테레사 메이 총리가 초래한 혼란으로 완전히 빛이 바랬다.”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스튜아트가 들려준 설명이다.
그러나 단지 몇몇 총리들의 무능이 보수당의 지지율을 물구나무 세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보수당은 영국 전역의 우파 그룹들에게 당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안겨주었다. 2010년 이후 토리당은 데이빗 카메룬 총리 아래서 (내핍을 뜻하는) 전통적인 ‘재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했으나 보리스 존슨 총리 정부는 트럼프 스타일의 포퓰리즘으로 방향을 틀었고 리즈 트러스 총리 아래서는 대처 총리가 추구했던 자유시장주의가 당의 지배적인 노선으로 떠올랐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린 니젤 파라지의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인 영국개혁당이 보수당의 표를 분산시킨 것도 노동당이 거대 의석을 확보하는데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전에 말했듯 정치는 경제에 관한 좌-우 분리에서 벗어나 이민, 정체성과 다문화주의와 같은 문화적 이슈에 중심을 둔 개방-폐쇄의 대치로 이동하고 있다. 이같은 문화적 이슈에 대해 토리당의 내부의견이 갈린데 비해 개혁당은 한목소리로 영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폐쇄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다고 가정할 경우, 파라지가 보수당을 장악해 완전한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트럼프도 이런 방법으로 공화당을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바꾸어놓았다.)
트럼프를 중심으로 단결된 미국의 공화당과 달리 영국의 우파는 분열되어있다. 그러나 영국 총선의 진짜 교훈은 미국의 좌파를 위한 것이다. 영국인들은 이번 선거를 노동당 대표인 케어 스테이머에 대한 지지 투표라기보다 보수정부에 대한 반대투표로 간주한다. 스테이머는 유권자들을 열광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의 지지율은 토니 블레어가 압승을 거둔 1997년 총선 당시의 지지율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스테이머는 노동당의 전략적 위치 선정에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토리당의 전설적 간행물인 스펙테이터의 편집장 프레이서 넬슨은 “스테이머에게 유리한 점은 그가 보수당을 전략적이고도 효과적인 방식으로 관리해온 것처럼 국가 또한 그렇게 관리할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스튜아트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중도층을 선점한 스테이머가 상대적으로 표밭이 적은 우측으로 보수당의 등을 떠밀었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머는 반유대주의로 악명을 떨쳤던 극좌 이념가 제레미 코빈으로부터 당권을 넘겨받았다. 그는 대대적인 숙청운동을 벌여 당에서 급진주의자들을 솎아냈고, 워크(woke: 사회적 각성)와 관련한 모든 아젠다를 피했으며, 경제성장과 정부서비스 개선을 노동당이 추구하는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노동당은 현 보수정권이 제안한 예산삭감을 대부분 받아들였고 현재로선 그 어떤 증세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TV로 중계된 수낵 총리와의 토론에서 스테이머는 영국의 유럽연합(EU) 복귀 가능성을 배제했다. 짐작컨대 유권자들이 유럽대륙으로부터 영국으로의 자유로운 인구이동을 떠올리는 순간 이민이라는 중요 이슈를 우파에게 통째로 내어주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수낵 총리와의 TV 토론에서 그는 “역대 총리들 가운데 수낵은 이민문제에 관한 한 가장 진보적인 총리”라고 주장하며 우파의 관점에서 토리당을 공격했다.
필자가 영국에서 얻은 교훈을 요약해보자. 올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민주당은 중도층 유권자들 끌어와야 하고 이민 문제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되며, 평범한 다수의 유권자들을 소외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이념적인 ‘워크’(woke) 이슈를 피해야 한다. 이것이 골수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지는 못해도 민주당의 선거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수적으로 제한된 골수 지지자들의 칭찬을 받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