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때가 많구나
깨끗하고 그칠때 없기는 물 뿐인가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은것은 바위 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우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과 서라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가 곧은 줄을 그것으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철을 푸르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에 밝은 빛이 너 만한것이 또 있겠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 시, 오우가, 윤선도1587--1671)
고산 윤선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으로 자연을 통해 고결성, 영원성을 노래한다. 변화무쌍한 기회주의적인 세속적 가치에 좌절한 고산은 자연속에서 참된 인간형을 찾고 그와같은 인간이 되고자 정신적 자기 수양에 몰두한다. 윤선도의 '오우가'를 오늘 새삼 만나는 것은 아닌데 솔밭사이를 거닐며 수십 번을 읽고 또 읽고, 그 침묵의 솔에 등기댄다. 내고향 전남 강진 도암에서 멀지 않는 보길도섬에 산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인생을 덧없음을 깨닫고 많은 시를 쓰고 풍류, 그 현묘한 일상을 뛰어 넘어 자유로운 정신세계로 나아가는 풍류도, 자연속에서 우주적 세계 속에서 시를 쓰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젖는다. 사람에 버림받고 세상에 마음 줄 데가 없는 고산이 쓴 '오우가'는
지금 우리가 사는 기계 문명 물질 만능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자연을 벗삼아 사는 풍류가 만든 옛 선조들의 인간의 무늬, 그 마음의 풍류가 얼마나 그립고 아름다움인가… 돌산이 좋아 산 사이 흐르는 맑은 물소리 바람 소리에 마음 담그며 솔사이 바위들을 심었더니 침묵의 솔, 바위는 금상 첨화 더없이 아름다운 벗이요, 서로 침묵으로 화답한다. 말없는 바윗돌은 밤이면 벌레들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침묵의 향으로 화답한다.
석산동에 돌산지기처럼 솔과 더불어 살아온 내 생의 50년 타향살이,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 밖으로 도망가고 싶을 때, 솔밭 사이를 거닐으며 고산의 '오우가'는 현실의 근심, 괴로움에서 일탈하고 싶은 정신 세계 멋이요 ,마음이 속세를 떠나 우주속을 거닐은 풍류의 멋을 즐긴다. 멋과 풍류를 즐기던 정철은 세상을 숨어사는 즐거움에서 은둔자의 즐거움을 누린 풍류시인이다.
'재넘어 성권농 집네 술 익단 말 어제듣고/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 아혜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하여라( 시인 ,정철의 풍류 넘치는 삶)
우리 옛 조상들은 인생 자체를 풍류로 보고 멋과 풍류를 즐겼다. 요즘 돈푼이나 가진 졸부들은 이혼 소송에 몇조원을 쓰고, 방종하며 남의 주머니 돈을 챙겨서 출세한 졸부들이 세상을 밤낮 시끄럽게 한 것을 보며 귀를 씻고 싶다. 세상을 주머니에 몇푼의 돈으로 좌지우지하려는졸부들이 만든 세상에 왜 세상은 함께 미치고, 흥미로워하는지 모른다. 옛 조상들의 그 우아한 정신세계 그 멋, 도를 배우며 속세를 벗어나 그 멋과 밝은 현묘한 도, 풍류를 배울 수 있다면 이 풍진 세상 속세를 벗어날 수 있으련만…
어쩌다 기계 문명이 사람을 삼켜버린 세상에 인간의 혼탁한 욕망을 벗어나 맑은 마음으로 순수한 자연 속에서 신선처럼 살아온 옛 선비들의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맑음, 구름 밖 천리를 떠도는 우주적 깨달음, 그 풍류 시인들의 그 희열 과 정신적 아름다운 삶이 오늘 다시 그립다.
어부사시사 (시. 윤선도)
앞갯벌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려 온다
찌그렁 찌그렁 어여차
강촌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