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엿장수 맘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정치, 경제, 날씨 마저도 기상 이변이란 팻말을 내걸고 엿장수 가위 소리를 철컥 절그렁 내곤 한다. 애틀랜타 일기만 해도 그렇다. 최상의 날씨가 이어지기를 바램 하고 있지만 날씨들이 ‘내 맘이야 ’하고 부르짖고 있는 터라 일기예보를 건너 뛰거나 지나칠 수가 없다. 날씨는 해마다 늘 하던 대로 제 버릇대로 진행중인데 와중에 같은 하루가 한 번도 겹쳐지지 않으며 하루들이 이어지는 터라 가끔은 대충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문득 문득 돌아보게 되지만 그리 아우성 칠 일도 아니었고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이미 지나갔구나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날씨도 인생 단면 같다고 여기면서. 비가 오면 더 내릴 강수량이 없으면 그만 두겠지. 천둥 번개가 나대면 제 힘에 부치면 그만 두겠지. 햇살이 무더우면 저녁을 기다리고 그늘을 찾으면 이 또한 지나가는 것으로 세월을 견뎌온 것이었다. 어찌 보면 정치도 경제도 엿 장수 마음대로 좌지우지되고, 선거 유세 또한 엿장수 맘처럼 엎치었다 뒤치었다 판도가 뿌옇다. 엿장수 마음이 세상을 교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엿장수라는 주제에 걸맞게 유년의 세상 풍경이 새삼 떠오른다. 엿장수 가위는 다용도였다. 엿장수 행차를 알리는 알림이 역할에다 엿을 잘라내는 도구로 온 동네 아이들 귀를 자극하는 소리로 까지 다양했다. 동네방네 이 골목 저 골목 헤집고 다니며 온 동네 코흘리개들을 유혹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별다른 군것질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라 ‘떨어진 고무신이나, 사이다, 콜라. 맥주 빈병에다 머리카락도 좋아요” 엿장수 너스레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몰려든다. 헌 고무신 한 짝을 들고 뛰어오는 아이에게도 엿 조각 선심이 훈훈해지는 풍경이 따스하다.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빈 병이며 구멍 난 솥단지에 멀쩡한 양은 냄비를 들고 나온 녀석까지 손수레 엿을 보려 까치 발을 세운다. 고사리손들이 가져온 고물이 엿이 되지만 가져다 바친 고물들은 사연 많은 것들이다. 전쟁 포화를 견뎌냈던 숟가락에 일제시대를 거친 양은 냄비에다 닳고 깨어지고 부러지고 구멍 나버린 쓸모없고 사용하기에도 미처 모자랐던 물자들이 고물로 변신한 것인데 가져오기만 하면 달콤한 엿이 되었다. 엿장수가 지나간 마을에는 해가 질 무렵 부모님이 논 밭에서 돌아오시면 이집 저 집에서 지청구와 매 타작 소리가 하루 행사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곤 했다.
널따란 판대기에 펴져 있는 엿을 대팻날 쇠붙이를 가늠자로 갖다 대고 가위 손잡이로 툭 치면 적당한 양이 잘려 나오는데 엿의 분량은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다. 세분화된 정치, 경제, 교육분야 단면들이 과히 엿장수 마음을 빙자한 흐름을 방관해도 될까 싶을 만큼 유야무야 흐지부지 호도되고 무산되고 있는 현실이 실정으로 존재하고 있다. 세상만사가 마치 엿에서 유래된 것처럼 엿에 비유된 말들이 예로부터 지금 세상에까지 일상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엿 먹어라’ ‘엿을 먹인다’ 라는 고약한 말도 존재하고 있다. 골탕문화 명맥을 유지해온 어원 원조가 엿장수에서 기인된 것 같음은 엿장수 맘대로 가위를 흔들어대고 엿장수 맘대로 엿을 잘라주었으니까.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 ‘엿 같은 세상’ 이란 푸념 섞인 인생들의 하소연이 질척하게 베어 있지만 삶의 고지가 높을 수록 남발될 수 밖에 없음에 위험 수위를 보게 된다. 동네 신작로를 휘돌던 엿장수 가위 소리가 뒤안길로 사라진지가 오래다. 고국 방문길에 민속촌에서 만나졌던 엿장수 가위소리가 유년의 추억을 불러 들이는데 곁에서 뻥이요 하는 소리가 세월 따라 흘러가버린 추억이 곱게 곁들여져 있었다. 입시 시험장 진풍경으로 수험생들에게 엿을 먹이고 학교 담벼락에 엿가락을 눌러 붙이는 풍경이 아직 유효한 효험에 대망을 기대하는 풍습으로 아직 보기 드문 광경이 되어 남아 있다고 한다.
한세대가 저물고 한 세대가 일어나면서 엿장수 가위 소리도 전래 동화로 넘겨지는 시점에 머물고 있다. 산업화 시기에 고국을 떠나 이방인이 삶을 자처해온 이들은 고향을 떠나 있지만 늘 고향을 그리워한다. 꿈을 안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비애감이 엿장수가 나타나는 마을 풍경 속에 서글픔으로 어른거리기도 하고 한편으론 요란한 엿장수 가위 소리에 흥겨운 마을 풍경이 그려지는 것이 어쩌면 엿장수 떠돌이 삶을 나그네 된 이민자를 풍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모를 일이다. 명절 무렵이 돌아 오면 집집이 엿을 고아내는 내음이 온통 집안에 풍겼던 기억 또한 새롭다. 행사처럼 동네 젊은이들이 모여 엿치기 놀이가 벌어지면 개평 한 조각 얻어 먹으려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었다. 먼저 엿가락을 뚝 분지르고는 입으로 그 단면을 확 불고는 서로 구멍을 대보고 구멍이 제일 크게 난 사람이 이기는 놀이로 구멍이 클 것 같은 엿을 고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입에 들어간 엿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입에서 사르르 녹아 목으로 미끄럼을 탄다. 달콤한 환상세계는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어이없이 지나갔던 옛 엿 맛에 새롭듯 입에 침이 고인다.
여러 시인분들이 엿이나 엿장수를 묘사하며 엿장수 마음을 시의 소재로 삼아온 사유를 조금은 알 듯 하다. 엿장수 가위 소리에 인생이 풀리고 매듭 짓기도 하며 엿장수 마음처럼 넉넉해 지기도 하고 엿장수의 허름한 입성처럼 고달픈 인생살이 서정이 서려 있는 것이 인생이었다. 엿장수는 광대가 아니었다. 질척이는 삶의 파도에 몸을 낮추면서 어렵사리 등대 같은 삶의 푯대를 생을 걸고 지켜낸 영웅이었다. 하지만 정계 재계에서 엿장수 마음을 흉내 내고 있는 현대판 엿장수들은 음식점 쓰레기통 냄새가 난다. 기억에 남아있는 엿장수 마음에는 엿 장사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훈훈한 인심을 뜻하던 ‘엿장수 마음’이란 말이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꼴 때 쓰는 말로 변천되어 버렸다. 동네 어귀에 엿 판을 둘러싸고 있던 따스함이 서려있는 풍경속에 가위 소리가 장단을 맞추는 엿장수의 구성진 노래가락에 간절한 그리움이 인다.
그립다.
가위 소리에 장단을 맞춘 엿장수의 구성진 노랫가락이며 간절한 그리움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