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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말의 인플레이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6-07 08:16:52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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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시인·수필가)   

 

한 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어 왔던 모임이었는데 선선한 바람을 타고 전갈이 왔다.

오랜 만에 만난 모임이라 반가운 얼굴들 마다 환한 표정들이시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대화가 시작되고 아니나 다를까 언제 어디서든지 대화 주도권을 잡으셨던 그분의 대화 습관이 어쩌면 그대로일까 싶을 만큼 여전히 외 홀로 목청을 높이고 계신다. 대화에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펼 수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회를 붙들게 되면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말을 많이 해야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사는 것 같은, 말을 많이 해야 인정받는 것으로, 무시당하지 않으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여전히 굳게 붙들고 있는 듯하다. 개인의 기질일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으로 떠들어 대는 행위는 대화 기술 부족이라 할 수 밖에. 대화 요령이 부족하면 편안한 어우러짐은 오리무중이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며 끝 무렵까지 적나라하게 지식 수준을 드러내는 좌석이 되고 말았다. 소탈한 대화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대화는 품귀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격하거나 무분별한 말이 길어지면 가만히 들어 주는데도 인격적 기품이 추락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채로 세 번 거르라고 했다. 표현의 절제는 대화에 나서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기본인 것인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소통 단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도 덤으로 얻게도 되고, 그럴 수 있지도 쉬워진다. 숙고하고 필요한 말도 다듬어서 해야 함을 인정하게 되고 상대가 받아들일 분량의 한계까지 감안하게 될 뿐 아니라 오해를 부를 소지는 없을까. 상황에 따라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아낄 수 있는 성찰도 덤으로 얻어진다.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말을 아끼고 내면이 얕을수록 말이 번다 하다. 빈 깡통이 요란하 듯,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새기다 보면 성찰하는 습관을 각성하게 된다는 요지를 얻게 된다. 말이란 서로의 소통을 위한 도구로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라서 말하는 이의 품위와 품격을 드러낸다.

평소 말수가 적고 예사롭지 않은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보이던 사람 입에서 쏟아 낸 말들로 인해 인격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리 드러나지 않던 분의 입에서 선하고 맑은 아름다운 생각과 고결한 인품이 드러나기도 하는 일들을 미루어 보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요, 존재는 언어를 통해 나타나고 표현된다. 언어는 곧 존재이다. 말의 존재성은 언어를 통해 나타나고 표현된다. 말의 위력을 인정하며 중요성을 깊이 숙고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는 입만 부지런하고 듣는 일에 게으른 자는 소통 단절 원인제공자라는 주홍글씨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날마다 수없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근본 어원과 뜻을 잘 모르면서 사용하는 예가 많다. 정계나 언론계에서 특히 언어 인플레가 심한 편이다. 말에 인플레가 심하면 양치기 소년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에 버금갈 만큼 소시민들의 크고 작은 모임에서도 말 인플레가 쉽게 발견되기도 한다. 매사에 과한 것은 과유불급을 빚어내기 마련이다. 듣기 거북한 언어가 양산되고 시대 따라 문화 따라 언어도 변질되고 급기야 인플레 길을 걷고 있다.

언어의 성찰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교보다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자세와 말 한마디에도 진정성 있는 말로 상대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상대와 대화 할 때 깊이 공감하는 태도로 들어주는 것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견인력 있는 대화법일 것이다. 관심을 보여주는, 귀를 기울여 주는 습관이 얼마나 관계의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지 새겨볼 일이다. 누구와의 대화이든 말의 무게감과 진정성에 먼저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오래된 관계라 해서 함부로 내뱉듯 하는 말은 삼가했어야 할 일이다. 말의 남발은 말에 담긴 고유한 의미의 새김이나 진정성 퇴색되고 인플레이션을 거친 말들은 결국 빈말이 되어버리고 만다. 

바람직한  관계를 이어가려면 관계 성숙 기본인 말을 절제하며 가려야 함은 물론이다. 언어 성찰이 대화 성찰로 이어지는 대화의 장에서도 언어에 대한 예절을 갖출 줄 아는 자 만이 성숙한 대화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은 언행을 통해서 드러나기에 각별한 언어 성찰이 두드러지게 요구될 수 밖에 없음이다. 해서 말을 입 밖에 내놓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경구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언어에 대해 고민 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평소, 할 수만 있다면 상대를 의식하며 배려하고 예의바르게 말의 품위를 갖출 수 있을까 고심하고 계신다 하신다. 좀처럼 쉽지 않은 귀한 생각을 만난 것이다. 누구와도 격세지감 없는 대화 나누기가 조심스러워지신다는 하소연까지 곁들이신다. 언어 인플레이션 현상일까. 관계도 대화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던 것이 개인의 직감만은 아닐 것이다. 대화를 피하다 보면 사람까지 피하게 되는 경지에 들어서지는 않을까 심려가 번진다. 시대적 언어 현상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각성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마디 고운 말의 씨앗이 심겨지면 고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되고 세상은 아름다운 말을 품게 된다. 말의 씨앗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일을 우리네 몫으로 삼아 말의 인플레이션 감축에 마음을 모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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