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가정의 달 5월로 들어섰는데 바닥 없이, 갈피 없는 TV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얼마전에 방영이 시작된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배우 백일섭씨 가정사가 공개 되었다. 부부 갈등 끝에 졸혼이라는 길을 택하게 되면서 따님과의 단절을 풀어가는 과정으로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겪게된 아픔, 대립, 번민 과정들이 열거되면서 따님의 애틋하고 후덕한 마음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지속적 가정 폭력 불안 속에서 성장한 과거를 가졌는데도 온화한 성품이 돋보였다. 가정 폭력에는 정서적 학대, 언어 폭력, 가학적 행위 폭력을 행사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가해자 나름의 동기가 있을 것이나 온 가족을 불안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일이 자행되고 폭력 피해자는 상처를 안게 되고, 그 상처가 미처 아물기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심신은 깊은 수렁에 빠지듯 종국엔 세상이 무서워지고 자신도 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가해자는 자신 행동에 분명한 동기로 자행된 행위라고 스스로를 정당화 할 수 있겠지만 피해자가 가족이지 않은가. 그 상처를 돌보며 어루만져 주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아빠 등장에 온 가족은 불안에 떨어야 하고 피폐해진 정서가 깊어지다 보면 학교 생활에서도 자신감을 잃게 되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문제아로 발전할 소지를 얻게 된다. 심지어는 결혼을 하면서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하는 심정으로 가정을 버리듯 도망하듯 지금껏 자라온 둥지를 버리게 된다.
가해자 자신도 성장과정에서 얻은 외로움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지만 내가 평생을 다해 사랑하고 아끼며 모든 힘을 쏟아 가꾸고 보듬어야 할 소중한 가정에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울분과 외톨이였던 외로움과 사랑의 굶주림을 무질서하게 부인과 자녀들에게 쏟아 놓아야 했던 것일까.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독한 이기주의적인 소행은 아니었을까. 깊이 자신을 들여야 보아야할 일이다. 평생을 동반해야 할 사람과의 충분한 마음 나눔의 부족이요 대화 부족이 아닐까. 술에 만취한 아버지의 가정 폭력은 아이들을 불안이란 공포 속으로 몰아 넣게 되고 세상에 나가서도 무기력한 아이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아이들은 가정폭력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이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하고 감싸주지 못한 가정폭력 가해자가 정당방위라 부르짖어도 될까. 언어 폭력에다 밥상을 엎거나 손찌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가족들은 피해자로 적반하장 과정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수년, 수십년을 어쩔 수 없이 시달리게 된다.
성장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며 불우하게 자라오면서 겪은 트라우마를 마치 성장통처럼 디폴트를 자초하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상황까지는 초래 하지 않았을 터인데. 이렇듯 아픈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은 존재감 제로의 아이로, 표정 없은 아이로 성인이 되어가고 끝내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세습처럼 대물림 피해는 악순환 될 수 밖에 없음이다. 고통이란 불완전한 과업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표상하는 신화적 인물로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가 있다.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을 받게 되면서 바위를 밀어 정상에 오르게 되면 다시 출발했던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원한 노동의 형벌을 이어가는 인생이 된 것이다. 고통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인생들의 고통을 대변해주는 신화 인데, 과연 인생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까. 가난도 고통을 유출해 내지만 결국은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서로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아이러니의 변증법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만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에게 끝없이 결핍의 충족을 요구하면서 갈등을 빚어낸다. 요구는 욕망의 비롯이요 욕망은 충족되어도 계속 발생과 소멸이 동시다발적으로 반복된다. 욕망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만족은 불가능하다. 남남이 서로 만나 사랑으로 시작된 일들이지만 계속 사랑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발생하고 있듯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 존재하는 고통의 본질은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으로 용서해야 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 까지 용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를 용서로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상기 알고 있지만 용서해야 할 일 앞에 서면 수영할 줄 모르는 잼병에게 물에 뛰어들라는 강요를 받는 느낌이 들곤 한다. 한 뼘이나 남았을까 싶은 남은 날들을 돌아보며 슬기로운 마무리를 위해 용서의 베일을 생각 없는 아이들처럼 훌쩍 벗어버려야 한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모든 것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양보하고 맞춰가는 것이 촌수 없는 부부사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누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인데 배우 백일섭씨는 아직 노년기에 접어들지 않으신 것 같다. 한국 영화계 중견배우 백 일섭씨의 Happy Ending Story가 화면을 타고 흘러나오기를 기대해본다. 1촌인 자녀들과 불화는 해결되신 것 같은데 촌수 없는 부부사이는 용납이 쉽지 않은 멀고도 가까운 관계임을 새삼 짚어보게 된다. 화면에서 만났던 배역처럼 훈훈한 아버지 모습으로, 낭만과 정이 넘치는 남편 모습으로,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맛깔스런 연기에 곁들여진 ‘홍도야 울지 마라’ 를 열창하셨던 그 때 그 모습처럼. 가정의 달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노년의 행복은 어린시절의 행복한 성장이 좌우한다는 사실과 촌수 미스테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