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지구촌 나날은 온통 어두운 뉴스 일색이다. 뉴스로 해가 뜨고 뉴스로 해가 진다. 행복을 실어주는 뉴스거리보다 불안한 뉴스 일색으로 부정적 정서를 불러들이는 메뉴 일색이다. 자살, 이혼, 우울증, 치매환자 증가로 기운을 빼앗기고 만연해 있는 살인, 범죄 등으로 긴장과 초조감에서 쉽게 놓여날 것 같지 않다 전쟁, 재난 등 자극적이기에 충분한 뉴스 일색이라 뉴스를 피하려 해도 뉴스쇼크에서 피할 길이 없는 매일매일이 뉴스 격돌로 인한 충격치에 휩싸여 있다. 뉴스 매체의 전달력은 지대하기보다 엄청나고 막대하다. 뉴스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기폭제의 계기는 아름다운 소식 전달이 원천일 것이다. 뉴스 쟁점은 빠르고 정확한 것이 필수이기도 하지만 거친 소식 또한 때로는 세상살이 나침반 역할이 되어 주기도 할 뿐더러 주요 이슈가 되는 논점의 쟁점도 놓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뉴스를 제공해주는 사명감 감당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범죄율의 증가보다 범죄가 과격해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비도덕적인 뉴스와 특히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불쾌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정치꾼들의 현주소로 드러날 때마다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하는 뉴스거리를 수도 없이 접해왔기에 뉴스 제목만 훑어보고는 접어버리는 신문 구독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기를 서로서로에게 조언해야 할 판국이다.
지인 한 분은 더는 뉴스를 보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뉴스 다이어트를 선포하셨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뉴스 소비를 줄이기로 했다”하시면서 뉴스를 대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나름대로 조용하게 살아가려는 편안한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을 때도 있다고 하셨다. 필자 역시 ‘Me Too’ 라고 말하고 싶음이 절실한 터이라서 어떻게 하면 신문을 대하면서 정보 습득과 만나고 싶은 지면을 계속 만나면서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은 혼란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시민으로, 어머니, 할머니로 작가인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물론 21세기라는 특정 시대상을 논하거나 단언하긴 어렵다.
지나간 이전 세기보다 세상은 전반적으로 점점 안전해지고 있는 편이라 고는 하지만 개인 각각의 위기와 단체나 공동체와 얼마나 결부되어 있는지는 개별적인 문제라고 본다. 이 시대의 특징은 정보 홍수 시대라는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와 이미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면서 이미지와 영상으로 된 뉴스를 다종다양한 선택의 여지와 접하게 되면서 쉽게 중독에 빠져들 수 있는 약점도 있다. 미국심리학회 웹사이트에는 ‘과도한 미디어 사용은 정신건강을 해칩니다’라는 알림이 있기에 이르렀다. ‘미디어 과포화 상태’ 로 하여 젊은이들은 뉴스가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 한 예로 기후 재난 염려증에 시달리게 되자 고질적 두려움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그 결과로 더 나빠질 빙하 유실과 연계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지구 기후재난을 피하기 위해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하는 젊은이들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 뉴스 과부화로 신문 보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소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는 소화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인터넷상 정보가 범람하면서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채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가짜뉴스에 또 다른 거짓말이 추가되면서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원인으로 사람들의 불완전한 인지과정이 지목 받고 있다. 가짜뉴스는 양산되고 있고 한편으론 가짜뉴스를 가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확증 편향’ 습성도 가짜뉴스 범람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 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소신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에 떠밀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과 부합하면 가짜 뉴스라도 믿어 버리고, 자신의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거부하는 경향 탓에 가짜 뉴스가 양산되고 있다. 해서 가짜 뉴스가 계속되는 이유는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가 불안정해질수록 대중의 삶이 힘겨워지고 사회 불안이 증폭되고 가짜뉴스는 온갖 모략으로 대중을 선동하며 국제 정세까지 흔들어 놓게 된다. 하지만 부정적 뉴스 과부화로 신문 보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소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는 소화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든 노인네가 살아가는 공간을 유지해 가기에도 적잖은 정보가 필요하다. 뉴스 단절을 선언할 만큼 뉴스 염려증에는 이미 굳은 살이 박힌 상태라서 일상에 필요한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뉴스거리를 골라보는 재미도 누려보려 한다. 시니어 맞춤형 뉴스 코너를 스스로 조립해가며 적절하게 경계해야할 뉴스 선별법도 꽤나 이력이 쌓인 편이라 가끔 인터넷 접속을 하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혼란한 세상을 직시하느라 우울감에 빠지거나 미래를 비관하지 않으며 뉴스를 소비하면서 시니어 자리에서 접한 뉴스를 소화하며 균형감각을 붙들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이견에 맞서 보기도 하면서 나이 무게만큼 적절한 반경 유지를 이어가려 한다. 시대 흐름과 격을 이루며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 현주소에는 뉴스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뉴스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상기하며 분별력 있는 독자의 자리를 지켜 내야할 사명감을 잊지 않아야 함을 감히 역설하고 싶어 진다.
오늘도 뉴스 현주소에는 뉴스를 기다리는 독자들과 시청자들이 대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