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방식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트럼프 캠페인 전담 취재진에 따르면 그의 대중 유세는 종교 부흥회를 연상시킨다. 뉴욕타임스는 ‘즉흥적이고 불안정했던’ 트럼프의 집회가 지금은 잘 짜인 엄숙한 종교행사 분위기를 풍긴다고 전했다. 특히 대중 유세의 막판 15분은 수시로 ‘하나님’을 입에 올리는 복음주의 교회의 응접기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누구인지 분석한 자료를 샅샅이 훑어보았을 터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그의 가장 든든한 우군은 미국 전체 인구의 14%를 아우르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다. 2020 대선에 참여한 유권자의 25%가 백인 복음주의자들로 채워졌고, 이들 가운데 75%가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백인 유권자 중 71%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들과 교회 출석 빈도가 비슷한 흑인 유권자들은 9:1의 압도적 비율로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연맹’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는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열혈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20년 사이에 미국인들의 생활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 다시 말해 극적이고도 급속한 미국 사회의 세속화라는 배경 아래서 살펴보아야 한다. 필자의 저서 “혁명의 시대: 1600년부터 현재까지의 진보와 후퇴”에서 지적했듯 미국은 신앙생활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다른 선진공업국들과 구분되는 외딴 존재였다.
그러나 1990년대 무렵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2007년 이후 급속히 줄어들었다. 미시간대학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로널드 잉글하트가 보여주듯 2007년 이후 미국의 종교 인구 감소세는 서베이에 참여한 49개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베이에서 드러난 사실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오늘날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12번째 국가다. 제너럴 소셜 서베이에 따르면 1990년의 경우, 종교를 갖지 않은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10% 미만에 불과했다. 오늘날 이 수치는 30%선을 넘어섰다.
기독교의 교세가 축소되는 이유를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중단 없이 이어진 과학과 이성의 진보 및 종교적 회의론이 대다수 선진국에서 진행된 세속화에 동력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과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기독교가 택한 일련의 선택도 교인 감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가 그의 저서 “미국의 복음주의: 보수적 종교와 현대화의 혼란”에서 지적하듯 복음주의 신앙이 대세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교리와 신앙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에 재빨리 적응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죄, 이단, 가톨릭주의, 간음, 이혼, 물질주의와 엄격한 기독교의 도덕률로부터의 이탈에 대한 경고로 채워졌다. 그러나 제리 폴웰 목사와 같은 복음주의 전도사들은 기독교를 사용자 친화적이고, 교리 부담이 적은 종교로 만들었다. 신앙 교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는 정치로 채워졌다.
지난 수년간, 복음주의는 신앙을 낙태, 동성혼과 트랜스젠더 권리 반대 등 전적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규정하며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해온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교분리 원칙에 익숙한 민주당계 교인들의 탈교회화로 나타났다. 갤럽에 따르면 20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71%에 달하던 기독교인의 비중이 2020년에는 46%로 곤두박질쳤다.
노터데임 대학의 학자인 데이비드 캠벨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를 공화당과 연결 짓는 미국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스스로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교회를 등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파가 종교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무기화하는 것은 미국, 혹은 기독교 신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브라질, 엘살바도르, 이탈리아, 이스라엘, 터키와 인도를 비롯한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애틀랜틱지의 데릭 톰슨이 지적했듯 불가피한 추세인 종교의 세속화는 신앙심과 공동체 의식 상실 등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의 핵심을 이루는 감정적 요인을 불러온다. 앞서 언급한 필자의 책에는 선견지명을 지닌 정치 해설가 월드 립프만이 이미 1929년에 제기한 세속화된 사회의 문제점이 인용되어 있다. “인간은 왜 그들이 태어났고, 일을 해야 하며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 무엇을 존중해야 할지, 어디로 슬픔과 패배감을 돌려야할 지에 관한 확실성을 박탈당했다.”
필자의 저서에도 언급됐듯 “이같은 공허감 속으로 포퓰리즘, 민족주의와 권위주의가 걸어 들어온다.” 현대적인 정치세력들은 공허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앙’과 그들이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제공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해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가족, 국가와 신 등 ‘나’보다, 혹은 나의 에고보다 중요한 어떤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로 이를 간략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커다란 정치적 도전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정치, 종교,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억압과 통제를 없애고 전에 없이 큰 자유를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가 기술했듯 “불안은 자유의 어지러움이다.” 현대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부, 기술과 자율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때 신과 신앙이 떠나면서 남긴 가슴 속의 깊은 구멍을 채우지 못한다. 정치로 이를 채우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앞으로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될 세상의 모습처럼 보인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