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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나를 부르는 텃밭

지역뉴스 | 사설/칼럼 | 2024-04-05 14: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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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곳에 가서 어떻게 지날 거냐며 걱정하는 친구들과 헤어져 뉴저지에 정착한지 어느덧 열 달째를 맞이한다. 그리고 온전하게 겨울 한 철을 지내 본 소감은 ‘지난겨울은 따뜻했네.’였다. 오히려 어느 해 겨울인가, 폭풍우가 잦던 LA 날씨보다도 더 포근했는데 그것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 현상이었다고 하니 마냥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인가, 이곳 뉴저지 산속에 봄이 일찍 찾아온 느낌이다. 우중충했던 겨울나무들이 푸른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고 산길 주변의 숲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생명의 기운이 뻗어난다. 아파트 앞 잔디밭은 녹색 카펫으로 바뀐 지 오래고 도로 양편으로는 노란 개나리꽃과 배나무의 일종인 ‘Callery Pear Tree’가 꿈길 같은 하얀 꽃 터널을 만들어주고 있다. 봄, 봄, 봄이다.

한국에서는 이 봄에 표를 구하러 자기 고향 텃밭을 찾아간 정치인들이 많았는데 텃밭이 자기를 배신했다며 눈물짓고 있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배반한 건 텃밭이 아니라 4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자기였었는데 텃밭만 탓하다니--.

산동네 딸네 집 텃밭이 내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때 맞춰 잡초 뽑고 물주고 했던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텃밭에 올라가니 지난해 11월, 구근으로 심어놓았던 튤립이 그 굳은 땅을 뚫고 고개를 쳐든다. 튤립은 오전에 해가 잘 들고 오후에는 그늘진 곳에 심어야 꽃이 오래 간다고 해서 그런 곳을 골라 심었다. 얼굴을 내민 것은 튤립만이 아니다. 작약과 아네모네 그리고 마늘과 양파도 ‘나도요, 나도요’ 하고 앙증스런 작은 손을 내민다. 참으로 신묘한 생명의 모습이다.

모두 15개로 구획된 텃밭에 이것저것 섞어서 키우던 것을 올해부터는 꽃밭과 채소밭을 구분하기로 했다. 우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갈아엎고 흙을 잘게 부수고 밭을 평탄하게 골라 주는 초벌 작업을 끝냈다. 그리고 4월 중순까지는 일교차가 심하거나 몇 차례 꽃샘추위가 예상되기 때문에 추위에 견디지 못하는 모종은 뒤에 하기로 하고 씨앗 파종부터 서둘렀다.

상추와 쑥갓, 시금치 씨앗을 뿌린데 이어서 지난 해 수확이 좋아 이웃에도 두루 인심을 썼던 들깨,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등을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딸아이는 자기 일 하는 사이사이 가든에 관한 학습도 많이 해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었고 부녀 간, 모녀 간 작업 분담이 일사분란하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추억을 만들어가는 봄날이 즐겁다.

봄은 설레임이다. 조지아 주 애틀란타의 아미카롤라 폭포 주립공원에 가면 애팔래치안 트레일 2,100마일의 출발점이 있다. 메인 주까지의 미국 동부 14개 주를 지나는 대장정의 트레일인데 지난 2월 그곳에 갔을 때 언감생심, 나도 한번 떠나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 그 산길에 지금쯤은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고 있을까.

봄은 생명이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리고 생명은 평등하다.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거나 국민과 소통하는 대신 압수 수색과 처벌만 능사로 여기는 반 생명에 대한 심판 여론이 높다. 그래서 서울의 봄은 더욱 들떠있는 것 같다. 봄날에 선거를 치르면서 사람들은 ‘빼앗긴 들’을 노래하고 마침내 죽은 나무에 꽃 피우는 작업을 벌여나갈 것이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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