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은 대표적인 한국식 영어로 이야기된다. 한국서 ‘파이팅’은 “이기자” “승리하자”는 다짐, 격려, 응원의 뜻으로 쓰인다. 세계 언론 앞에서 열정적으로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던 한국의 소년 궁사는 당당하게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따냈다. 하지만 미국 선수나 관중들이 이런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은 경기장에서 본 적이 없다.
‘스킨십’도 그런 영어 중 하나다. “스킨십을 강화해서-” 라는 표현이 한국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미국서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할 일이 아닌 듯하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들과 스킨십, 피부 접촉을 강화해서 어쩌자는 말인가? 더 많은 키스, 더 잦은 포옹, 더 많은 터치를 하겠다는 선언인가? 요즘 같은 때 ‘직장내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염려가 있다.
남가주 한 은퇴촌에 사는 한인이 전하는 이야기-.
단지 내 입주자들이 이용하는 골프장에는 늘 한인 시니어들이 많다. 특징 중 하나는 샷을 하고 나면 주위에서 “나이쓰~”라는 칭찬이나 격려성 추임새가 많다는 것. 액센트는 마지막 글자인 “-쓰”에 있고, 말끝이 좀 길게 올라가는 특징을 보인다.
지난 겨울,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이어지자 한인 골퍼들이 골프장 대신 대거 단지 내 탁구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탁구장 여기저기서 특이한 액센트의 “나이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한 미국 노인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인 것을 봤지만 “이 ‘나이쓰~’가 당신이 아는 그 ‘나이스’라는 이야기를 미처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옥스포드 영어사전’(OED)에 매년 한국서 온 단어가 새로 오르고 있다는 건 알려진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파이팅’(fighting)과 ‘스킨십’(skinship)이 한국서 사용되는 영어표현으로 소개돼 있다는 것이다. 콩글리시로 불리는 한국식 영어가 종주국의 사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벌써 2년전 일이다.
영어는 워낙 너른 바다다. 영국은 물론 미국만의 언어에서 떠난 지 오래 됐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는 많다. 인도 영어와 남 아프리카 영어가 다르다. 영어는 이 다양한 변형을 받아들이고 있다. 품이 넓은 대국형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콩글리시 같은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표현에도 설 자리를 내 줬다. 이런 식의 영어 표현과 발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미국 안에서의 변형도 만만치 않다. 남부 플로리다에서는 새 영어 방언(dialect)이 주목받고 있다. 영어이긴 한데, 어딘가 다른 수상한 어법의 영어가 나타난 것이다. 그 영향은 물론 스패니시 때문이다. 이곳은 쿠바 등 라티노 이민자 밀집지역. 마이애미가 있는 플로리다 최남단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는 라티노가 전체 인구의 65%, 시 단위로는 80%, 심지어 95%가 넘는 곳도 있다. 10여년 전 자료니 지금은 그보다 더 늘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언어의 변형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얼마 전 플로리다 국제 대학교(FIU)의 언어학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남부 플로리다의 영어 사투리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300가지가 넘는 이곳만의 독특한 영어 표현이 발견됐다.
예를 들면, ‘카르멘이 안토니오와 결혼했다’고 할 때 영어 표현은 ‘Carmen got married to Antonio’ 이지만 여기 젊은이들은 ‘Carmen got married with Antonio’라고 쓰기도 한다. 차에서 내릴 때는 ‘got out of the car’라는 말 대신 ‘got down from the car’을 쓰곤 한다.
이런 류의 변형은 스패니시를 단어 그대로 영어로 옮겨오기 때문에 생긴다. ‘쇠고기’ 혹은 ‘육류’라는 뜻이 둘 다 있는 스패니시 ‘까르네’(carne)가 여기서는 ‘쇠고기’ 한 가지만 가리킨다고 한다. 이런 영어들이 다 영어에 들어간다. 한국의 ‘먹방’(mukbang), ‘대박’(daebak)이 새로운 영어 단어로 등재되는 세상이니-.
그러고 보니 미주 곳곳에 형성된 코리아타운만의 영어 방언은 없겠는가? 찬찬히 찾아보면 적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