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삼문 -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울리는 저 북소리 목숨을 재촉하네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머리를 돌리니 해도 서산에 걸렸구나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황천길에는 주막집 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 밤은 뉘집에서 잘까?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이 시(詩)는 성삼문이 38세 때 단종복위에 실패하여 한강가 노량진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죽음에 임(臨)한 그의 심경(心境)을 읊은 절명시이다.
그는 천하의 올바른 위치에 서 있었으며 천하의 큰 길을 걸었다. 또한 부귀(富貴)로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었고 위세(威勢)와 폭력(暴力)으로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대장부(大丈夫)의 기품(氣品)을 보여준다.
안일(安逸)한 불의(不義)의 길 보다 험난(險難)한 정의正義)의 길을 택한 선비정신도 엿볼 수 있다.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1418~1456)은 충청도 홍주(현 충남 홍성) 출생, 본관(本貫)은 창녕(昌寧), 아호(雅號)는 매죽헌(梅竹軒), 자(字)는 근보(謹甫), 시호(諡號)는 충문(忠文)이다.
조선 초기 세종, 문종, 단종, 세조 때의 문신(文臣), 유학자, 한글학자, 정치인, 저술가로서 사육신(死六臣)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잔인무도(殘忍無道)한 거열형(車裂刑)을 당한지 230여 년이 지난 숙종 17년에 역적의 죄명에서 벗어났으며, 영조(재위34년 째)임금이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追贈)하였으며
'충문'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종우(宗愚) 이한기 (미주한국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