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맑고높은
높은 하늘
끝도 없는 시공을
소리없이 거니는
한조각
하얀 구름아,
어디메서
가을을 싣고
또 소리 없이
찾아 들었는가 ( 권명오, 칼럼니스트, 연극 동우회장 역임)
얼마 전부터 한국일보에 부족한 저의 글 옆에 함께 글을 쓰시던 권명오 선생님 칼럼이 보이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서운했습니다.
어떻게 아틀란타 이민자의 역사를 권명오 선생님 만큼 쓸 수 있을까요… 나같이 부족한 사람은 가끔 시에 취해 술렁일 때 선생님의 이민사를 읽으며 정신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최고의 현인은 언제나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닫고 초연한 정신으로 인생을 그대로 바라보는 자란 말처럼 이민 역사, 그 때, 그 일을 마치 오늘 처럼 쓰시는 선생님의 초연함에 감동합니다.
역사의 기록 없는 이민사가 있겠는가… 마치 장엄한 서사시처럼 대범한 풍자의 멋으로 아틀란타 이민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선생님의 글에 굽이 굽이 묻어 있습니다. 마음에 따뜻한 진실 없이는 글을 쓰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가을 하늘에 흰구름 한 조각 흐르듯 소리 없이 스며드는 이민의 방랑자의 삶의 기쁨과 슬픔이 스며든 이민 역사의 삶의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마을 전설을 눈을 감고서도 우린 서로를 안다고 하지만 외롭게, 너무 외롭게 어디에서 살다가 갔는지도 모르게 헤매이다 떠나고 마는 길손들이었습니다. 고 한만희 시인의 ‘가을을 만나려면’ 읽으며 하늘 길 떠나신 시인의 그리움에 젖어봅니다.
가을을 만나려면 -- 한만희 시인
가을은 서슬 서슬
튀정 부리는 바람처럼
제일 먼저 숲에서 만난다.
짜증으로 작열하던
여름이 허리 굽어 가는 길
빤히 바라 보이는
길섶에 몸 감추고
쓰르륵, 쓸쓰르륵
새로 태어난 귀뚜라미들
성급히도 울어대는데
갈증의 시간들을 쪼아먹고 사는 새 한마리
가을은 벌써 으시시 스며들고
내려가는 발길은 휘청거린다
하여도 가을을 만나려면
깊디 깊은 하늘길
숲으로 가야하리--- 하늘 길 떠나신 고 한만희 시인이 오늘 다시 그리워집니다.
부족한 저의 책 ‘지리산 나무꾼’ 출판식에 오셔서 시를 읽어주시던 그 모습이… 오늘은 다시 그립습니다.
문학은 인간 생활의 ‘진솔한 흐름’이며 그 한 사람 마음의 흐름’ 이라 하신 시인을 만나려면 언어의 샘물에 그 물줄기에 스며 들어야 합니다.
짜증이 작렬하는 여름을 떠나려 길섶에 감추어진 가을 하늘 소식을 만나려 흰구름처럼 길 떠나셨는지요.
고향 마을 아틀란타에서 스모키 산기슭에 시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오신 어르신들의 걸음 걸음이 시와 예술로 수놓으신 시인들의 마음이 그 영혼의 빛이 되어 먼 훗날이 고장 전설이 그 누구의 역사 아닌 우리들의 모습이 후세에 이 고향 마을 전설이 되어 그리움 되어 살아 남을 것입니다. 멋진 연극동우회도 살리시어 돌산 맑은 물 흐르는 아틀란타를 손님처럼 다녀가신 이민자의 역사를, 그 시절, 우리가 살아온 이민자의 설움의 역사도 남기셔야죠.
권명오 선생님… 아틀란타 100년 이민자의 역사에 선생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당신의 영혼의 깊은 곳에 마음 따뜻한 진실을 눈을 감아도 보이는 역사속에 수 놓으셨습니다. 가끔 가슴시리게 외로울 때, 그때 그 울림의 언어로 남기신 글은 희망이라는 가슴 따뜻한 울림으로 남을 것입니다.
‘가끔 우린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오는 지도를 갖지 않는 나그네 같다’, 그것은 언어의 샘물에서 멀리 떠나있을 때’라 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언어는 우리의 숨결이, 우리 모두의 함께 부른 노래의 메아리가 될것입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길 빕니다. 다시 한 번 무지개 뜨는 새 아침에 희망의 턱걸이를 하시길 빕니다. 배 박경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