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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캐슈 나무 씨앗을 기다리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6-06 11:59:54

에세이, 송윤정 금융전문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송윤정(금융전문가)

“먹어. 네가 먹어온 식사 중에 폭력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있는 거 같아?” 방금 함께 사냥해 온 사슴과 토끼를 요리한 것을 내밀며 엄마가 딸에게 말한다. “계란?” 눈물을 글썽이며 십 대의 딸이 반문하자, 엄마는 사육되는 닭들의 비참한 현실을 얘기하고, “치즈?”라고 다시 반문하는 딸에게 “온종일 젖을 짜내는 폭력을 감당하는 사육되는 소의 현실”을 일깨운다. “캐슈?” 반항기 가득한 딸이 또다시 반문하자, 살인 전문가로 살아온 엄마도 지지 않고 말한다. “캐슈가 얼마나 피 묻은 산물인지 알아?” 

넷플릭스를 켜니 넘버1 인기영화라는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더 마더(The Mother)>가 뜨길래 무심코 보기 시작했다. 미군 내 살인 전문가였던 엄마가 딸 출산 후 산속에 은신하며 살아오다 그 딸을 미끼로 자신을 유인해 죽이려는 상대로부터 딸을 지켜내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소재의 액션영화였다. 하지만, 눈 덮인 산속에서 총 쏘는 법, 사냥 등 딸이 혼자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 후 어두침침한 산장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이 장면은 인상 깊었다. 산업화된 사회에 길들여진 삶에 피땀 묻지 않은 산물이 없음을 짤막한 대사로 담아낸 것은 내 기억 속에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남을 듯하다. 

산업화된 동물 사육의 환경 파괴 및 비자연적 사육법은 많이 알려져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에서 나는 넛에도 인간의 폭력과 파괴가 담겨있다니! 찾아보니, 2011년에 타임지에 ‘피의 캐슈’(Blood Cashews)라는 제목으로 “처음엔 콩고의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가, 그리고 버마의 피로 물든 루비가 있었다. 다음은 베트남의 피로 물든 캐슈너트인가?”로 시작하는 기사가 나왔다. 베트남은 캐슈너트를 가공처리해 수출하는 세계에서 1위 국가로, 이는 마약 중독으로 잡힌 젊은 남성들의 강제노동으로 이뤄진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에 장시간 캐슈넛의 껍질을 벗기는데, 단단한 겉껍질에서 나오는 캐슈너트 오일은 강한 약품으로 피부에 화상을 입혀 어떤 이들은 손가락을 잘라내기도 한다. 2019년 또다른 잡지에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캐슈넛의 잔인성”이란 제목으로 일을 거부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폭행, 전기 충격, 굶주림, 장기간의 고립 등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업화된 캐슈 경작은 노동착취라는 인권 문제뿐 아니라 한 작물만을 지나치게 재배하는 모노컬처로 병충해와 토질 악화 등 환경 파괴를 야기한다. 캐슈 원재료의 주수출지인 아프리카에서는 수익성 좋은 캐슈경작을  모노컬처해 산림을 파괴해 그 피해가 커지고 있음을 보고한다.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치고 죽은 땅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없이 또다른 산림을 파괴해 경지를 만드는 산업화의 시대는 자연재해를 가속화해 왔다. 게다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구 반대편에라도 가서 산업화된 대량 생산을 해 가져오는 농작물 및 제품은 유통과정에 상당한 탄소 발자국 (Carbon footprint)을 남긴다.

근현대 경제학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산업화를 정당화하고 끊임없는 자연 파괴와 거대 자본에 명분을 주어왔다.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생산한 것을 나누며 사는 작은 공동체를 꿈꾸며 집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부터 ‘모든 좋은 것은 자연이 주며 공짜다. (All good things are wild, and free.)’라고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에 공감한다. 작년 늦가을 씨를 뿌리고 겨우내 비닐을 덮어놓았던 상추는 싹을 내고 키워 올봄 내내 잘라 먹고 있다. 2월 중순부터 5주간 한국에 다녀온 후 크게 자란 상추를 보고 신기해 친구들을 불렀다. 모두 어떻게 겨울에 상추를 키웠냐, 집을 비운 사이 남편이 물을 주며 가꿨냐며 신기해했다. “남편은 이런 게 자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는걸요. 전 작년 가을 씨를 뿌렸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자연이 이렇게 키웠어요.” 그렇게 말하며 밑동까지 싹둑싹둑 잘라 상추를 나눠주었다. 그런데, 밑동만 남은 상추에서 다시 잎이 파릇파릇 나더니 손바닥만큼 커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올봄 내내 마당에 심은 상추를 먹고 있다.

캐슈너트의 재배 과정을 읽으며 캐슈 나무를 집에서 키워 친구들과 열매와 너트를 나눠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종자 씨를 주문했다. 캐슈 나무는 캐슈사과라 불리는 빨간 열매와 그 열매에 붙은 콩알 모양의 껍질 안에 넛을 포함하는데, 캐슈사과는 철분, 비타민 B1, 칼슘 등 영양이 풍부한데 오렌지보다 5배나 더 많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단다. 커다란 초록 잎에 빨갛게 달린 길쭉한 사과가 얼마나 탐스러운지, 난 벌써 캐슈나무가 내 커다란 화분에서 자라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믿으며 나는 씨앗을 기다린다.

[에세이] 캐슈 나무 씨앗을 기다리며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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