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행복한 아침’이 한국일보 애틀랜타 지면에 게재되기 시작되면서 첫 구독자로 자처하는 큰딸과 14년이란 긴 시간을 작가와 독자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판 한국일보 ‘여성의 창’에서는 엄마와 딸이 번갈아 기고해왔던 인연도 마치 문인 동호회처럼 이어오고 있다.
온라인으로 구독해온 큰 딸은 독자 입장을 고수하면서 격려 고취 차원의 촌평을 아끼지 않았었는데, 지난 5월20일자 행복한 아침에 ‘아직도 서툴기만 한 어른’이 게재된 다음 날로 큰딸은 고운 마음을 e-mail로 보내왔다. 메일을 보내올 때마다 엄마라는 호칭이 얼마나 정겨운 부름인지, 딸아이들 유년으로 돌아가곤 한다.
큰 사위가 샌프란시스코 소재 GTU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오가는 메일 속에 학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 엄마 한창 봄이구나 싶지만 날씨는 쌀쌀한 요즘입니다. 봄이면 뭔가 새롭고 시작을 맞이하는 느낌이지만 늘 학교 스케줄에 맞추기 마련이라 또 졸업 시즌이네요. 보통 달력으로는 5월이지만 학교 스케줄로 보면 학기를 마치거나 졸업식이 있는 달이라 저희에게 5월은 늘 연말같은 달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리해야 할 일들도 많고, 주말에는 행사가 많고, 사람 만날 일도 많아요. 집돌이 집순이들의 수난의 달이기도 해요. 무언가 정리를 해야하는 일을 하다보면,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도 같이 정리를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뭘 그리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지. 더 나은 방법, 더 나은 모습, 더 나은 결과를 늘 만들고 싶었나 봐요. 돌아보면 그리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뭘 그리 아등바등 나를 못 살게 굴었는지. 내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야 겠다 다짐합니다. 조금은 엉망이거나 어설퍼도 괜찮아하는 마음의 여유로 사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서 내 주위 사람들이 더불어 편할 수 있도록…….
한 땐 첫째 딸이라는 타이틀이 참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큰딸로 별로 한일도 없는데 늘 크레딧 만 받고 부담감만 가졌던 것 같아요. 그냥 겉옷일 뿐인데…. 그냥 별 일이 아닌데 너무 큰일로 생각하고 부풀리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엄마가 이제 그만 미안해 하셨으면 해요.. 따지자면 저도 죄송스런 딸인 적이 많으니 그냥 퉁 치고 말아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힘들어 말았으면 해요. 그냥 마음 정리를 하다가 엄마가 생각나서 몇 자 적었어요. 늘 강한 부드러움으로 마음을 잘 다스리시는 엄마가 생각났어요. 감사해요. 미처 생각지 못한 많은 부분들까지 잘 챙겨주셔서. 건강하세요 . 연말같은 5월의 하루를 보내면서 큰딸 드림-
큰 사위와 딸 부부가 살아온 과정이나 경로의 궤적을 돌아보면 최선을 다해 온 삶이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무슨 일에든 내 일처럼 혼신을 다해 왔다. 일찍이 학장 자리에서도 일과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확고하다는 논평을 들어왔고 관용과 책임감으로 맡은 일을 수행해왔기에 부총장 초빙을 받은 것을 살펴보면 바람직한 리더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총장으로 임명을 받으면서 학교 설립 이후 최연소 총장, 최초 한인 총장,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최초 총장이라는 미담이 쟁점으로 떠올라 기사화되기도 했었다.
윌리엄 글렌(William D Glenn) 이사장은 “김 박사의 특출한 지도력과 과감한 행동력, 학교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높이 사고 사람 중심의 겸손 함도 겸비해 커뮤니티와 협력하는 리더임을 확인하고 이사회 만장일치로 총장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일대 한글 일간지와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를 비롯한 한인 신문에 한인으로서 주류 사회로부터 높은 평가와 인정 받음에 대하여 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부부가 어쩌면 삶을 향한, 지향하는 목적이 한결 같을까 싶다. 정신적 부요를 누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음을 익히 삶 속에 적용하면서 살아온 맏이 부부에게 조용한 찬사를 보낸다. 총장 취임 이후로 우리 큰 사위 부부에게 심은 대로 거둔 것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내려 가면서 과연 독자 분들 앞에 내놓아도 되는 글일까. 고심 끝에 ‘송고 예정” 파일에 저장을 해 두고 한 주간을 묵혀왔었는데, 같은 이민자로 자식을 둔 부모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부시시 마음을 흔들었다.
총장 추대 임명 4년차에 접어든 지라 이젠 긴장 없이 나누어도 될 시점이라는 생각에 팔불출 근성이 발동하고 말았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책을 열심히 읽어낸 탓인지 나이를 과하게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문맥을 붙들면서 발표 예정이었던 글이 발표되는 사고가 빚어지고 말았다.
부디 나이든 아낙의 사고로 읽어 주시길 바램 하면서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대해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팔은 언제나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유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유월의 푸른 신록 내음이 바람에 실려온다. 햇살 고운 유월, 초록 희망이 유순한 표정으로 찾아든다. 한 해의 허리가 접히는 유월이다. 어느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