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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머니날에 부르는 찔레꽃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5-23 12:49:03

에세이,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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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시인·수필가)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 장사익의 찔레꽃 중에서

장사익 선생님의 찔레꽃 동영상을 보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경청하면 공들여 내는 한음한음, 절제된 들숨 날숨, 소리를 밀고 당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심을 전하려는 마음이 느껴져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렇게 한국인의 정서와 한을 잘 녹여 부르시는지 참으로 보배롭고 귀한 소리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지인의 페이스북에 찔레꽃이 피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뒤를 이어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사진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월은 찔레꽃의 계절인가보다 싶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다섯개의 하얀 꽃잎 중심에 노란 폭죽이 터진 것 같은 꽃술을 품은 자태가 순박하고 아름다웠다. 그 찔레꽃들은 대부분 흰색이었고 간혹 아주 옅은 분홍색도 끼어 있었다. 하얀 찔레꽃을 보기 전까지 나는 찔레꽃은 붉은 색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마도 백난아 선생님의 ‘찔레꽃’에 나오는 노랫말이 자동으로 학습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친정어머니의 십팔번 중 한 곡이어서 외울만큼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사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백 선생님의 노래가 나올 당시 붉은 찔레꽃은 흔히 볼 수 있는 토종 식물이었는데 후에 멸종 위기에 놓였고 해남의 어느 화원에서 증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감사하다. 그러면 붉은 찔레꽃도 있고 노랫말도 면이 서는 것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친정 어머니는 가수가 되었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노래를 잘 하셨다. 목소리도 곱고 음정과 박자도 정확하고 꺾기도 잘하고 감정이 풍부해서 듣기 좋았다. 어쩌다 집에서 일할 때 전축이나 라디오를 틀어 놓고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방에서 들으면 가수 목소린지 어머니 목소린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창도 잘 하셨다. 동백아가씨, 수덕사의 여승, 찔레꽃 등 어머니가 자주 불렀던 노래들은 대부분 애절하고 슬펐다. 어머니는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이었다. 결혼 전엔 군대에 지원하여 여군생활도 했고, 결혼 후엔 요식업을 크게 하셨다. 왠만한 남자보다 통도 크고 손도 컸던 어머니는 삶이 버거웠는지 48살에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가 나이든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젊고 예쁘고 당차고 부지런하고 애교 많고 아름다웠다. 아흔이 넘은 큰이모를 보며 지금까지 살았다면 저런 모습이셨을까 상상해볼 뿐이다. 자매이니까. 어머니가 살았던 세월 보다 나는 더 많은 세월을 살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편친 않았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그때마다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던 어머니가 그리웠다.

타주에서 공부하던 딸이 여름방학을 하여 집에 왔다. 독서실 같던 집안이 사람사는 집 같다. 아이로 인해 웃을 일이 생기고 활기차다. 뭐 대단한 걸 해주는 건 아닌데 괜스레 몸과 마음이 바쁘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숫가를 함께 걷고 각자의 예술에 관해 나누며 24시간을 함께 하는 중이다. 딸이 손 뜨개질하여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다발을 어머니날 선물로 받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내 딸은 나의 어떤 모습을 기억해 줄까? 혹여 부끄러운 엄마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어찌 비쳐질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달라스는 지난 6일 발생했던 총격 참사로 큰 충격에 빠져 있다. 아울렛 몰에 아이 옷을 바꾸러 갔던 한인가족이 참변을 당해 5살짜리 아들만 살고 부모님과 막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도 무섭고 딸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겁난다. 오늘도 딸이 친구들과 갔던 동네 쇼핑몰 주차장에서 도둑이 주차된 차 유리를 깨고 차 안을 털어갔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다. 그 서늘한 범죄 현장을 지나 집에 돌아온 딸을 보며 나는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채 문을 걸어 잠그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가장은 밥벌이하러 직장에 가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 이 땅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이국에서 부르는 찔레꽃은 슬프다. 그래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조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 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 백난아의 ‘찔레꽃’

어머니, 그곳은 안녕한가요?

[에세이] 어머니날에 부르는 찔레꽃
박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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