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늘 생각은 하고 있지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지 못하고, 특별한 날에나 툭 던지고 마는 무심한 엄마였다. 자식들의 깊은 마음과 정성을 헤아리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나이를 먹은 후에야 조금이나마 깨달아 가는 거북이 엄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부모가 되는 길이었다,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미완의 길을 무턱대고 걷기 시작해버려서 신비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애닯기도 하고……. 무어라 정리해서 자식들이 왜 감사한지 전달이 힘들지만 늘 감사할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가지 못하는 서툴기만 엄마다.
자식이 건네준 긴 세월의 정성을 다 기억 하진 못하지만 딸 넷의 이름을 부를 때 느낄 수 있는 풍성함을 마음에 새기며 남은 날을 걸어가려 한다. 머리에 서리가 내렸는데도 딸들로부터 배울게 많다.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나 덕담도 바닥나고 할머니 자리도 무색하다.
나이 들어가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손주들이 할머니 키를 풀쩍 넘어서면서, 막내 손자 두돌잡이 ‘귀요미’를 제외하곤 할머니 키가 제일 작다. 키도 어른스러움도 지혜도 제일 작은 사람이다. 하긴 내 아이들이 커가면서도 서툴기는 여전했고 아이들이 지닌 온유한 삶의 지혜를 터득해 가면서 엄마라는 부름에 걸맞는 모양새로 다듬어져 가기를 얼마나 염원했는지 모른다. 손주들이 우뚝우뚝 노구를 지켜주는 든든한 기둥으로 성인이 되어 가고 있는 데도 여전히 나는 어른이라는 생각을 가지기엔 거북스럽고 송구한 마음이 되곤 한다.
딸네들 눈엔 서툰 엄마로 보이겠지만 사위들 눈엔 부모란 이유만으로 완벽한 어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혹여 서툰 모습이 드러나진 않으려나 노심초사다. 나이만 먹어버린 어른이라 자손들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서툴기만 했고 나이든 겉모습만 어른이었다.
손주들의 번쩍이는 지혜와 슬기로움을 배우며 비로소 어른이란 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다니. 하이스쿨, 대학,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직장인으로 어른 티를 물씬 풍기며 어른스러움을 다져가고 있는 손주들에게서 배울게 참으로 많다.
엄마가 되기 전에 미리 알아 두었어야 할 일이었지만 아이도 서툴고 엄마도 서툴고 아빠 또한 서툰 것 투성이라 육아와 양육 과정을 감당해 오는 동안 자기 합리화에서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면 반성의 쳇바퀴를 돌아가면서 현명한 엄마로, 책임감 있는 엄마로 거듭나려는 근근 용신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언감생심 나이들어가더라도 순수했던 유년의 정서를 간직하며 유년시절 모습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다질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 왔었다.
손주들이 자라면서 어른이란 고지를 바라보며 달리는 동안, 낭패, 실망도 겪을 것이다. 맑고 명랑하고 그늘진 데 없이 발랄했던 마음들을 잠시 잠깐 잃어버리기도 할 것이고 인생 노정에서 호젓한 길로 접어들 때도 있을 터이다. 오솔길로 접어들 때도 지름길로 접어들 때도 방황없이 분명한 향방을 찾으며 중심을 굳건히 붙들기를 잊지 않고 기도 드리고 있다. 될성부른 나무로 떡잎부터 알아 보았기 때문일 게다.
관심있는 분야에 즐겁게 심취할 수 있는 전공을 택해가는 과정에서 부모와의 유착 관계가 얼마나 바람직하며 빈틈없는 밀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용한 감동이 밀려들 때가 많다. 아이들 장래는 밝고 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기에, 당당하게 어디서도 오로지 유일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때로는 허둥지둥 삶의 미로에서 좌충우돌할 지경일 때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단 한사람의 우군이 옆에 있다면 그 삶은 괜찮은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서 그러한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누군가의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자고, 좋은 것으로 심는 일에 게으르지 말자고 일러주는 할미 이야기가 귀에 담기 불편할 수도 있을 터인데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는 우리 손주들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지. 긍정적인 태도로 예비어른이 되어가는 손주들을 볼 때 배우는 것이 갈수록 많아진다.
인간적 성장을 경쟁주의 사회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틀이 만들어진 세상을 동분서주하며 살아온 내 젊은 날들은 저항하는 것이 옳은 세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살아 왔기에 우리가 살아온 세대는 계속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덜 아프고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기를 다소곳이 갈구하며 바라고 간구하고 있다. 여태껏 서투름에 머물고 있는 노구는 남은 날 동안에도 딸네들과 사위, 손자 손녀로부터 배우고 익혀가며 새로운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구지심을 지켜내려 한다.
옛 시간을 반추할 때마다 행복하고 다사로운 시간이 되길 소원드린다. 가족 간 작은 갈등 조차도 행복했던 추억의 부분으로 남길 수 있는 지혜로운 후손들이 되기를 바램 해보면서 실오라기 같은 욕심 조차도 버려야지 싶다. 아직도 서툴기만 하고 나이만 들어버린 어른인데. 조금은 철든 어른의 면모로 다듬어 가자고 작심해본다. 많이 늦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