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가정의 달 5월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풍요가 가정이란 울타리를 지켜 내오신 우리네 어머니들이 버티어 오신 눈물과 땀의 대가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어머니 날이 돌아왔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가꾸기 위해 가족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가정 해체 원인과 예방법도 함께 숙고해야 한다는 5월의 울림이 가슴을 치며 밀려든다.
세기의 선물인지 괴물인지 모를 스마트 폰이 가족 간에 마주 앉았음에도 보이지 않는 높다란 차단 막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살아도 서로 속을 모른 체 자식은 부모 마음을, 부모 또한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이해 안되는 대상으로 궤적을 만들면서 살아 가고 있다. 완결판 가족은 없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해 가면서. 살아가는 하루가, 내일이 생소하고 예측할 수 없어 견디며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서로의 1순위가 되어야 하는 가족이 아닐까.
사랑 표현을 망설이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용서를 빌어야 할 기회를 놓치고 머뭇대는 동안 시간은 한치 오차없이 생의 끄트머리로 우리네를 데리고 가고 있다. 내 아내를 이렇게 몰랐던가. 내 자식 마음에 고인 아픔을 이렇게 몰랐던가. 가족이면서 다 알지 못하고 살아온 생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도 다시 써내려 갈 수도 없는 일. 생의 길목 마다 고인 삶의 허물들을 모으면 태산이 되려나. 내 어머니께서 남기고 가신 흔적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음이라 남은 여정 동안이라도 더는 어설픈 점 하나라도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몸을 사리게 만든다. 함께 여정을 걸어오며 서로에게 기쁨의 근원이 되었던 시간들은 생생한데 문득 돌아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 지는 무렵이다.
충격적 자극 척도가 되어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되고 채심하게 된다. 이 모두를 덮을 수 있는 내 삶의 0순위셨던 어머니. 그림자 만으로도 얼마든지 위대하고 숭고하셨는지.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이 어머니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남겨져 있어 어머니하고 나직하게 불러만 보아도 눈물 고이는 이름이 어머니다. 마음을 찡하게 공명 시키는 울림이 전해온다.
내 어머니의 맏이이자 첫 딸로 태어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온 유년시절엔 엄마가 내 어린 인생의 0순위였다. 코닦이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6.25 전란을 겪으면서 산기슭 노천 교실에서 뛰놀던 소녀가 여학생 시절에 당도하면서 0순위가 1순위로 밀려났다. 0순위 자리가 꿈결처럼 비워지면서 고운 시 한 편으로 채워지고 때론 세계 명작이 자리 잡기도 했었다. 결혼을 앞두고는 마음 속 서랍에 엄마의 0순위가 그대로 간직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엄마 곁을 떠나게 되었다.
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한 안타까움에 동동거리며 미안해했던 아이들이 삶의 1순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데 그 1 순위는 세월 따라 바뀌어 간다고 영원한 건 0순위라고 세월이 일러주었다. 마지막 내가 돌아갈 곳, 언제라도 나를 받아줄 한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또렷하게 떠오른다 했다. 생의 노을 무렵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갈수록 더더욱 절절해진다. 어머니는 세월의 유속도 우주 공간의 부피도 아랑곳 않으시며 사랑과 동경과 사무친 그리움이 서린 변함없는 느낌의 뉘앙스로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계신다. 평생을 내 마음 속의 0순위 자리를 지켜오신 어머니로 살아오셨다.
“어머니, 40대 초반에 홀로 되시어 어렸던 5남매를 부끄럽지 않게 키워 오신 위대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간호사로 후학을 가르치신 신세대 여성으로 자랑스러운 어머니로 살아 오셨습니다. 덕망과 균형 잡힌 생각과 실천이 있으신 분으로 내 삶의 초석을 놓으시고 건강한 삶의 모델로 지금까지 이 딸을 당당히 세워 오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에는 평온한 관계를 일구어 내려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자식들이 보고 있을 엄마의 심상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액 같은 사랑의 소리를 구사해야 한다는 끈질긴 집요로 일구어 낸 자그마한 성취들에 감사하며 오늘에 당도했다. 다사로운 사랑의 헌신을 마련하려는 분주한 마음을 향해 불꽃을 일구어 가며 살아왔다. 영원한 0순위를 지켜오신 내 어머니처럼 내 자식들 앞에서 0순위 엄마를 탐해보지만 어림없음이다. 자식 앞에서는 엄마 컴플렉스가 버티고 있는 터라서 0순위 자리를 조용히 접어 두기로 했다. 땅거미가 잦아질 무렵이면 운무 같이 어른거리던 노을도 엷은 어둠이 피어나는 먼 하늘로 스며들 듯.
젊은 시절을 이방에서 보낸 이민 1세대는 피로를 느낄 짬도 없이 쉬어가는 멋도 모른 채, 하루 피로를 자식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에 풀어내고, 한 주간에 쌓인 피로는 주말에나 풀자 하면서 버티어 온 터라 생의 마지막 피로를 풀 수 있는 날도 잊고 살아 왔다. 공기도 물도 늘 옆에 있어주는 사람도 잊고 살아가 듯. 잊은 게 아니라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 가까이에 있어 마음에 두지 못함 이리라. 피로를 잊고 살아온 것은, 잊은 게 아니라 모르고 살아온 것이 맞다. 잊고 살았던 젊은 날, 그 싱그러운 시절이 문득 문득 그리워진다. 고단 했던 삶의 무게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유일한 핏줄로 유착된 친밀성을 저버릴 수 없다면서. 그렇게 하루들이 장애물 경주하 듯 쉼없이 넘겨지고 노구를 끌고 남은 여정을 걸어가는 노년의 엄마들은 노곤한 오후 잠깐 졸다 꿈꾸듯 그렇게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