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요즘은 길거리에서 모세의 기적을 종종 마주친다.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모든 운전자가 주위를 둘러보고 꽉 막힌 도로에서도 어떻게든 차를 조금씩 움직여 앰뷸런스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누구에게나 흐뭇한 광경이다. 장면이 바뀌어 점심 배식 줄이 길게 늘어선 어느 회사의 구내식당. 갑자기 들어온 사장이 맨 앞으로 새치기를 한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사장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실제 일어난다면 대부분의 직원은 “사장님, 새치기 하지 말고 저 뒤에 가서 줄서요”라고 용감하게 외치거나, 아니면 “사장이면 다야?”라며 뒤에서 수군거릴 것이다.
앰뷸런스에 양보하는 것은 거기 타고 있을 환자의 5분이 자신의 5분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장의 5분은 어떤가. 물론 환자를 살리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는 앰뷸런스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또 모든 사장이 인간적으로 훌륭한 것도 아닌 만큼 사원들이 사장을 못마땅해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회사든 그 회사의 성패에 있어서 최고경영자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 등 성공 사례들보다 오히려 쇠락의 길을 걷게 된 회사들이 그 중요성을 더 잘 보여준다. 스마트폰의 사업성을 간과했던 노키아와 모토롤라가 아이폰과 갤럭시에, 반도체 업계의 선두였지만 시장의 흐름을 오판했던 NEC와 도시바가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잔 고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과소평가했던 포드와 GM이 도요타와 폭스바겐과 현대 차에 선두 자리를 내어주는 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작금의 치열한 경쟁시대, 수퍼스타 마켓의 시대에서는 이같이 한순간의 판단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갈리는 것이 다반사이며 그만큼 최고경영자의 판단 미스는 단순한 매출 감소를 넘어 회사의 존립과 직원의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누구나 다 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라면 회사가 현재 최고 매출을 자랑하는 S라면 대신 다른 라면을 출시했었더라면 그 회사의 매출과 이익은 어땠을까. 물론 그 라면은 개발팀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로 탄생했지만 다른 라면 대신 그 라면을 출시하기로 최종 결정한 최고경영자의 중요성도 절대 폄하해서는 안 된다. 직원의 훌륭한 노력도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가 없었다면 그 결실을 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훌륭한 판단을 할 수 있으려면 본인의 실력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조언도 잘 듣고 가능한 모든 정보를 동원해 최선의 선택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장은 책임 있는 결정의 마지막 단계인 만큼 그 시간은 본인뿐 아니라 회사의 모든 직원과 주주의 운명이 걸려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장이 못마땅해도 사장의 선택만은 훌륭해지도록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으는 것도 곧 그 구성원들 자신을 위한 길일 수 있다.
사장의 선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사장의 실력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직원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또 자기 배만 불리려는 사장은 직원들이 돕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라면 선택을 위해 주위의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장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그 5분이 직원과 회사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는 5분이라는 데 동의할 수 있다면, 사장에게 용감하게 직언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장의 시간도 최대한 아껴 줄 필요가 있다. 사장은 경영상 최선의 선택을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직원은 사장에게 “점심 줄은 언제든지 새치기 하고 고민 많이 하세요”라고 양보할 수 있는 회사는 어떨까. 결국은 그런 회사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그만큼 소비자·직원·사장·주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