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관계와 관련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일본 극우언론들의 극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대통령 방미 성과에 대해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일본의 보수우익 매체인 산케이 신문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의 핵사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 후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배우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산케이 신문은 일본의 언론들 가운데 가장 극우 성향이 강한 언론이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대 보유를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있다.
그런 언론이 이례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칭찬하고 나선 것은 한국 대통령이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아주 잘 움직여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케이 신문 외에도 윤 대통령이 한국 내에서 궁지에 몰리지 않도록 기시다 총리가 도와줘야 한다며 훈수를 둔 보수언론도 있었다.
그러더니 이번 주에는 한국의 국회의원이 독도를 방문한 것과 관련, 일본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라고 한국정부에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한국 국회의원이 자국 영토를 찾은 일을 갖고 일본 정부가 유감을 표명하며 항의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정부가 과거사 및 독도 문제와 관련해 억지 주장을 해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갈수록 도를 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본의 이런 행태의 바탕에는 자신들의 입장에 경도돼 있는 윤 대통령이 있다.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던 윤 대통령의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자 주어를 놓고 큰 논란이 일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발언”이라는 비판들이 쏟아지자 여당은 ‘일본’이 주어인데 번역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며 대통령을 두둔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근거로 댔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인터뷰 원문을 공개하면서 주어는 대통령이었음이 확인됐다. 대통령의 발언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을 여당도 자인한 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설사 여당의 바람대로 주어가 ‘일본’이었더라도 발언의 심각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만약 일본의 입장을 헤아린 발언이었다면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혹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정도의 표현을 써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정적이면서도 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마치 일본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의 발언을 듣는 것 같다. 이것이 정제되지 못한 표현의 결과인지, 아니면 일본의 입장과 일체화된 인식의 소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래저래 부적절한 발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미래지향도 좋고 안보협력도 필요하지만 과거사로 얽힌 국가 간의 관계개선에는 충족돼야할 전제조건과 순서가 있는 법이다. 윤 대통령과 일본정부는 지금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시간으로 7일과 8일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 방문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사죄를 직접 언급할지 주목된다. 곤경에 처한 윤 대통령을 도와주라는 일부 일본 극우언론들의 훈수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성의 있는 조치’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는 만큼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