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정헌법 1조를 신봉합니다. 내 절친인 지미 매디슨이 썼기 때문만은 아니지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조크에 좌중은 폭소를 터트렸다. 지난 29일 토요일 저녁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연례만찬장에서였다. 전통적으로 코미디언이 사회를 보며 조크와 위트로 진행되는 행사장에서 바이든은 유머감각을 십분 발휘했다.
바이든이 ‘지미’라고 친근하게 부른 인물은 미국건국의 아버지이자 4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매디슨(1751~1836)이다. 200년도 훨씬 전 대통령을 그가 ‘절친’이라고 부른 것은 자신의 고령을 부각시킨 익살. 지난 25일 재선 도전 발표 후 국민들의 반응이 어떤 지를 바이든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70%, 민주당의 과반수가 그의 재선출마를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나이’. 80세로 이미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인 그가 다시 선거에 나가겠다고 하자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
바이든은 우선 국민들이 나이를 이슈로 삼는 것은 합리적이고 당연하다고 인정했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 ‘절친 지미’가 보장한 국민의 권리라는 것이다. 그는 익살스런 나이 조크를 이어갔다. “여러분은 내가 루퍼트 머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지요. 나를 해리 스타일스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싫어하겠습니까?”
폭소는 다시 터져 나왔다. 억만장자 머독의 나이는 92세. 영국인 가수이자 배우인 스타일스는 29세. 머독에 비하면 자신은 아주 젊다는 주장이다. “내가 ‘늙었다’고요? 내가 보기에 그건 노련함입니다. ‘케케묵었다’고하지만 (그만큼) 지혜로운 것이지요.”
미국에서 “너무 늙었다”고 지적 받은 최초의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1984년 재선에 나섰을 때 레이건은 73세였다. 상대였던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는 56세. 70대 고령에 어떻게 또 4년을 통치한다는 말인가 - 당시 말들이 많았다. 선거를 한달 앞둔 10월 캔사스 시티에서 대선후보 TV 토론이 열리고, 관심은 자연스레 레이건의 고령으로 모아졌다.
사회자가 물었다. 국가위기상황이면 (대통령은) 잠도 못 잘 텐데, 그럴 경우 국정수행 능력에 문제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드는가. 레이건의 대답은 단호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는 장난스런 미소를 살짝 흘리며 그는 말을 이었다.
“이 선거전에서 나는 나이를 이슈로 삼지 않을 겁니다. 상대방의 연소함과 경험 없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중들의 폭소와 함께 나이 이슈는 묻혀버리고, 그 순간 먼데일은 현직 대통령을 누를 희박한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그해 선거에서 레이건은 49개주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여기까지가 대선토론 때면 단골로 회자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재기 넘치는 한마디로 나이 이슈를 묻었던 레이건이 다음 순간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해달라고 했을 때였다. 레이건은 1년 전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따라 여행하던 이야기를 마냥 이어갔다. 구비 구비 이어지는 해안 도로만큼이나 이야기는 정처 없이 흘러가고, 청중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다 못한 사회자가 그의 말을 끊고 나서야 분위기는 이전으로 돌아갔다.
레이건은 1989년 1월 퇴임 후 1994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10년 후 사망했다. 그가 재임 중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닌지 가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임무의 중차대함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고령은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60은 이전의 40, 지금의 80은 이전의 60이라고 하니, 고령에 대한 시각을 바꿀 때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