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나이가 들어간다 해서 누구나 다 어른 몫을 해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잇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 철부지가 있는가 하면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런 어린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해마다 달력이 바뀌어 가는데 습관적 현상처럼 당연시 받아들일 뿐, 나이가 더해갈수록 나이 만큼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이에 비례하는 어른다워짐에는 그리 의식하지 않은 채 삶에 몰두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나이 무게와 균형 있는 나잇값이 고스란히 어우러진다는 것은 과학 이론의 적용도 아니요,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 머문 과잉기억들을 들추어 낸다거나, 회고의 시간을 음미한다거나, 미래 금자탑을 그려내는 것도 아닌 것이었다. 구태의연한 성실을 고수하면서 나이듦에 익숙해지기보다 신체나이에 알맞는 일상을 일구며, 분주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노화와 병행하는 삶으로 선회되고있다.
노화는 퇴화가 아닌 성숙의 과정으로 자연발생적인 숙명이 아니란 것이다. 나이가 익어가는 것을 나이 들다, 먹다, 등으로 표현되지만 바라건데 기품있게 낡아져가고 싶다. 종국은 죽음이란 벽에 부딪히는 것이라서 주변에 평안을 끼쳐오며 선한 영향력을 후세에 남기는 취사선택의 여지없는 길을 들어서야 할 일이다. 나이란 내색하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내면 세계는 항시 푸르를 수 있음이요, 내면 숲 길은 얼마든지 울창하게 가꾸어 갈 수 있기에 나이 듦에 비례하듯 마음 숲에 나무심기를 오래 전부터 시도해오고 있었다. 둥글어진 조약돌처럼 세월의 물살을 온몸으로 견디는 동안 모나지 않는 어른이라는 착지점으로 달려 왔던 것 같다.
노년의 안식을 위험하게 하는 것은 신체적 극한 범위를 주관적으로 인정해버리는 개념적 판단이 가장 위험하다. ‘할 수 있다’는 극한의 경계 범위는 신비하게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것이라서 기억력이나 걸음걸이 보폭을 평소 한계를 시작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자신에게 보여주면서 나이듦에 안주하지 않으며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늙어버렸다는 착각의 오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서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찬란했던 여정 위에 서 있는 노년 인생을 유쾌하고 건강하게 나이듦을 맞을 수 있는 지혜를 풀어놓는 일이 나이듦의 절체절명 한계 효용이다. 나이듦이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한계이다.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배우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 먹고 싶었던 음식,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가면서 나이듦의 한계를 새로운 영역으로 열어나가는 일로 도전장을 내밀어보는 모험을 즐겨보자.
나이듦에는 한계가 없다. 노년을 청춘 못지않게 누릴 수 있음은 청춘과 다른 옷을 입은 것뿐, 다만 나이듦의 오차를 깊이있게 수용해 가면서 늙어가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다. 나이들어가는 나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 보는 여유를 갖고 더욱 알차게 익어가는 것이 나이듦의 한계인 것이다. 영과 육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해가는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은혜의 문으로 입성하는 것이다. 외로움, 나이듦을 거부하고 싶은 불안감, 의욕 없음, 모두를 인생의 내리막 길이 아닌 생의 마지막 언덕을 오르는 오르막길을 자인하는 낙관을 찍는 일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낮에 보이지 않던 별들이 밤이 되면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노년 문턱을 넘은 것이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것은 낯선 감각을 경험해 가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쓸쓸한 구석이 보이지않게 되고 주변에 넓은 그늘을 드리울 수 있어진다.
육신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5감은 서서히 줄어들지만 새로운 영감이, 새로운 영안이 날로 새롭게 열릴 것이다. 노년이 지혜를 발굴해내며 나이든 후에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젊음이 왕성했던 시절보다 깨달음 경지와 범주를 넓혀갈 수 있는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지금껏 느끼고 깨닫지 못했던 일들을 노년으로 가는 과정을 통해 깊음과 폭을 넓혀갈 수 있게 된다. 나이 들어가는 과정 앞에 에둘러 자격지심 끝에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씩 물러서게 되고 뒷걸음질치게 되지만 확실한 것은 젊은이들보다 실패를 통한 성공담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뛰어넘은 정신적 유산을 보유하고 있기에 후대들에게 신앙적 유산을 남겨야 할 소명이 주어진 것이다.
나이듦에 묻어 있는 경험 자아와 모험이며 인식의 그 무수한 편린들, 이 모두 지나온 삶의 헤아림으로 받아들인다면 나이 들어 버린 노인은 있어 주는 것 자체가 곧 삶이 아닐까. 체력이나 기억력이 쇠퇴해지는 감각까지도 모두 모험으로 간주하고 싶다. 70대로 접어드는 것도 색다름의 모험이요 80대로 접어드는 것도 나이듦을 무릅쓰고 섭렵이라는 모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 육신은 쇠퇴해가지만 영은 날로 새로움으로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해 가는 것이다.
천국 입성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으며 쓸모없음이라 서둘러 주저앉지 말아서 주변에 널찍한 그늘을 드리우는 종려나무 같은, 백향목 같은 삶으로 기품있게 품위있게 남은 삶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 드린다. 주님 만나 뵈올 시간이 가까워짐을 날마다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