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목사)
배운다는 것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도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는 여러 과목들이 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생물, 물리, 도덕, 체육 등 그 외에 많은 과목들이 있다. 모든 과목들을 다 잘 알아야 우수학생이 될 수있다.
그런데 인생의 학교에서는 많은 과목들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과목들을 잘 배우면 살아가는데 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다. 영어를 하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수학을 잘하면 계산을 빨리할 수 있고, 과학을 알면 복잡한 기계들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과목는 국어이다. 국어는 과목 중에 제일 어려운 과목이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는 시, 소설, 고전, 한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지식을 가져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글을 읽고 난 후에 그 글의 내용과 목적을 모르면 국어에서 가장 큰 흐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비행기를 탔는데 어디로 가는 비행기를 모르는 채 그냥 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 ‘님’에 대한 해석은 한 가지로 말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한 뜻이 담겨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그 ‘님’은 누구인가?
이토록 국어에서 주제를 파악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기에 국어의 문제는 주제파악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좌우된다. 인생의 학교수업에서도 우리는 날마다 국어시간에 들어가서 공부를 한다.
사랑의 시를 쓰고, 감동의 수필도 느끼고, 우여곡절 소설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옛날 고전의 아련한 이야기도 들춰내고, 알지 못하는 어려운 소통 속에서 한문 같은 문자를 해석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더 어려운 내 인생을 기록하는 작문시간을 갖는다. 도대체 내 인생의 국어는 무엇인가?
영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왕자와 거지’에서 우리의 희망과 꿈이 어떤 것인지 한꺼번에 보여준다.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튜더와 거지 탐 캔티의 삶이 어떻게 결합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것을 소설은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현대인의 삶에서 꿈과 이상은 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왕자는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낀다.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행복할 줄 알았던 사람이 아직도 무엇인가 허전하여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면 아무 것도 없어서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왕자의 아들 에드워드는 거지가 되고, 거지 탐은 왕자가 되는 날, 그 날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고 꿈꾸었던 날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또 부자가 가난해 지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잃어버리고, 힘이 없던 사람이 힘을 갖는다면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의 학교를 잘 못 다닌 것이다.
왕자와 거지의 주제는 단지 신분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도전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왕자는 왕자대로 거지는 거지대로 살아가는 그 모습 속에서 왕자는 왕자이면서 거지를 생각하고, 거지는 왕자가 아니지만 왕자의 품위를 간직하는 그런 삶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제파악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 함이니라”(마태복음13:13)
거지가 왕자가 된 가짜 왕자 탐이 잠깐의 왕자의 영화를 누렸을지라도 과감히 진짜 왕자는 에드워드라고 고백하는 그 말이 바로 거지이면서 왕자의 위엄을 갖춘 위대한 고백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왕자인가? 거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