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펠레스는 독일의 민간전승에서 기원한 악마다. 고전적 악마의 원조격인 이 메피스토펠레스가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독일의 문호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에 등장하면서다.
이 작품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언제나 선을 만들어 내는 힘의 일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관련해 생긴 말이 메피스토 법칙이다. 의도는 불순하거나, 더 나쁘게 말하면 악하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당초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역설적인 현상을 말한다.
때로 국제정치에서도 이 법칙은 적용되는 것인가. 푸틴의 러시아 침공 결과로 형성된 새로운 국제적 흐름에서도 그런 현상이 발견돼 하는 말이다.
전광석화 같이 진격해 우크라이나 점령을 기정사실화한다. 걸리는 시간은 한 주. 지체되어도 두 주면 충분하다. 기습작전에 나토(NATO)는 속수무책,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만다.
그 대담무쌍한 행보에 중국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세계는 대전략가로서 푸틴을 새삼 우러를 것이다. 뭐 이런 생각에서 저지른 것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거기에는 그렇지만 한 가지 나름의 명분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토의 동진현상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므로 그런 사태를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는 나토의 동진이란 트집과 함께 푸틴은 침공을 단행한 것이다.
푸틴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러시아군은 졸전에, 졸전을 거듭, 침공 2년 차인 현재 패배반보 직전의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와 함께 나토는 오히려 강화되면서 러시아와 나토 회원국 간의 접경지역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보다 두 배 가량 늘어났다. 중립국이었던 핀란드가 나토에 정식 가입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나토 창립 74주년이 되는 날을 맞아 페카 하비스토 핀란드 외무장관은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공식 가입문서를 제출했고, 나토는 이를 접수함으로써 핀란드는 31번째 나토회원국이 됐다.
이에 따라 핀란드는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고, 830마일에 이르는 러시아와의 국경에는 철조망이 쳐지게 됐다.
나토의 확장은 이로 그치는 게 아니다.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정식가입도 시간문제다. 거기에다가 현재 러시아와 교전 상태에 있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몰도바와 조지아도 나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푸틴의 입장으로서는 혹을 떼려다가 그것도, 아주 커다란 혹을 덧붙였다고 할까. 반대로 말하면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 입장에서 볼 때 푸틴은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물을 안겨 준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토 본부가 있는 브뤼셀 하늘에 핀란드 깃발이 휘날린 날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나토 가입의 공로를 푸틴에게 돌리며 ‘Thank you’를 연발했다.
핀란드의 나토정식 가입. 이는 동시에 지정학적 거대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유럽 따로, 아시아 따로 식의 지역안보 개념은 희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가 될 수도 있다.” 기시다 일본 총리의 발언으로 다른 말이 아니다. 유럽의 안보는 동아시아의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독재세력으로 양분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립의 회색지대는 없어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