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기독교의 핵심의 <두 근간(根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무덤에서 부활하심”입니다. 즉 <십자가(Crucifixion)>와 <부활(Resurrection)>입니다. 이것을 단 한 단어로 압축시킨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있다면 그는 바로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겉사람(옛사람)”시절때와 “속사람(새창조의 사람)”시절때가 분명히 구분되어지는 사람입니다. 전자에 해당될 때는 “공명심”에 들떠서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고 혈기로 충만했다면, 후자로 성숙하게 변화되었을 때는 “오직 성령”에 이끌려서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여 영적인 분별력이 탁월한 모습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였습니다. “이미(Already)”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어도, “아직(But Not Yet)” 온전히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 외관에만 집중하는 인간의 모습을 “겉사람(옛사람)”이라 지칭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는 <미완성의 겉사람(The Unfinished Person)>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거듭거듭 부인하여 아직은 겉사람(옛사람)에 불과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마 16:16). 그랬던 그가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순간, 그는 “새사람(속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實存)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사도 베드로는 “산 소망(A Living Hope)”이라는 지상최고의 <부활의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산 소망의 세 가지 특징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이라 더욱 더 명확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온 인류에게 각인시켰습니다(“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겉사람(육신)”은 분명히 낡아집니다(“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고후4:16”). “겉사람(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진 세대의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창 3:19, “너는 흙이니 흘으로 돌아갈 것이라”).
그러나 “속사람(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새창조를 이루는 사람, 고후 5:17)”은 복음을 통해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영적 실존(새사람, 새것)”을 가리킵니다(고후 5:17).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새창조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이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무덤에서 새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독대하여 대화를 나눈 당사자인 베드로는 영광스럽게도 이미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Already’)를 통하여 “겉사람(옛사람)”에서 부활하셔서 아직 하늘나라로 귀환하시기 직전의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But Not Yet’)를 온전히 살아있는 체험을 한 “부활의 산 증인(속사람)”입니다.
속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최상책(The Best Way)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황과 사건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겉사람(육신의 연약함)을 “희망”의 은총으로 인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그순간 “겉사람”의 연약함에서 “속사람”의 강함으로 이끄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입게 됩니다. 이순간의 <영적인 대변혁>을 사도 베드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부활의 산 소망”이라 예언한 것입니다(벧전 1:3~4). 그러므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도다.”(시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