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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의 오페라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05 14:23:07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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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LA미주본사 논설실장)

해 바뀐 지 얼마 안 된거 같은데 벌써 4월이다. 마를 대로 말랐던 캘리포니아의 호수들은 겨우내 연달아 찾아온 ‘대기의 강’ 덕분에 가득 채워졌고, 푸릇푸릇 살아난 산천초목이 봄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깨끗하다. 밝고 청명한 이 계절에 어둡고 음산한 오페라를 한편 보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et Melisande). 클로드 드뷔시의 유일한 오페라이자, 가장 신비하고 몽환적인 오페라로 꼽히는 작품이다. 2016년 에사 페카 살로넨 지휘의 LA 필하모닉이 디즈니 홀에서 반무대 형식으로 올린 공연을 본 적이 있으나 LA 오페라의 풀 캐스트 무대를 본 것은 처음이다. 

음악이 굉장히 아름다운데도 자주 공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선율과 아리아 위주의 전통오페라 음악에서 벗어난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 수수께끼 같고 선문답 같은 대사, 어둡고 폐쇄적이고 비극적인 분위기 등이 대중적인 접점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장소와 시대가 명확하지 않은 중세의 어느 나라, 숲에서 사냥하다가 길을 잃은 왕자 골로는 샘물에 금관을 빠뜨린 채 떨고 있는 아름다운 멜리장드를 만나 성으로 데려온다. 그의 아내가 된 멜리장드는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숲속 퇴색한 성에서 외롭게 지내며 남편의 이복동생 펠레아스와 사랑에 빠진다. 질투에 사로잡힌 골로는 두 사람을 의심하고 감시하고 훔쳐보다가 펠레아스를 칼로 찔러죽이고, 임신 중이던 멜리장드 역시 골로의 딸을 낳고 죽는다.  

숱한 드라마와 오페라의 소재가 된 ‘금지된 사랑’은 언제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 

1. 실화가 소재인 베르디의 ‘돈 카를로’;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와 약혼했던 프랑스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갑작스런 평화조약 때문에 그의 아버지 필립 2세와 결혼하게 되고, 왕비가 된 새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을 겪던 왕자는 둘 사이를 의심한 왕에 의해 처형된다. 

2. 잔도나이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이탈리아의 라벤나 지역에서 전쟁 중이던 두 가문이 화해를 위해 양 집안의 장남과 장녀를 결혼시키기로 한다. 문제는 장남이 추남인데다 장애인이었기에 선보는 자리에 미남인 둘째 파올로를 내보냈고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해버린 것. 시집에 도착한 후 자신이 속아서 결혼한 것을 알게 된 프란체스카는 시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에 의해 함께 죽임을 당한다. 

이 비극은 13세기 당대의 큰 사건이었고,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이들을 만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듣다가 “이들이 너무 불쌍해 정신을 잃고 시체가 쓰러지듯 지옥의 바닥에 무너져버렸다.”라고 동정심을 갖고 묘사했다.

3.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금지된 사랑의 원형이 된 고대 켈트족의 전설을 노래한다. 용맹하고 수려한 트리스탄은 삼촌인 콘월의 왕으로부터 왕비가 될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데려오라는 명을 받는다. 헌데 두 사람은 이미 전쟁터에서 만난 사이, 부상당한 트리스탄을 이졸데가 치료해주며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자임을 알게 된 이졸데는 복수를 다짐하는데, 운명의 장난으로 함께 사랑의 묘약을 마신 후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정염을 불태우다 왕에게 발각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 자주 비교되는 오페라다. 죽음으로 끝나는 금단의 사랑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두 작품 모두 서양음악의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여 현대음악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1862-1918)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바그너가 드라마와 오케스트라와 무대예술을 총체적으로 구현한 교향악적 오페라를 창시하고 이를 ‘음악극’이라 이름 붙였던 것처럼, 드뷔시는 한 편의 시와 같고 여러 폭의 그림을 이어붙인 풍경과도 같은 자신의 작품을 오페라라고 하지 않고 ‘서정극’이라 이름 붙였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이 작품들을 쓰게 된 동기가 모두 ‘불륜’ 이었다는 사실이다. 

바그너는 정치적 이유로 스위스에 망명했던 시기에 자신의 후원자인 부유한 상인의 아내 마틸데 베젠동크와 사랑에 빠졌고, 이루지 못할 사랑에 상심하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했다. 

드뷔시 역시 젊은 시절 유부녀인 블랑슈 바니에에게 푹 빠져 그녀를 위해 25개의 가곡을 쓰는 등 진한 사랑과 열정을 표현했으나 훗날 결별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작품이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상징주의와 인상주의가 채색된 독특한 오페라다. 19세기말~20세기초 미술에서 인상주의가, 문학에서는 상징주의가 활발히 일어나던 프랑스에서 드뷔시는 그때까지 서양음악에서 쓰이지 않던 조성과 화성, 음계와 화음을  사용한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드뷔시의 음악이 때로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상주의 그림이 빛의 인상과 장면의 느낌을 표현한 것처럼 음악에서도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장면 장면의 분위기와 느낌을 음색과 리듬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문을 연 예술가로 문학의 말라르메, 미술의 세잔과 더불어 작곡가 드뷔시를 같은 위치에 올려놓는 것은 당연하다.

LA 오페라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보기 드물게 수려한 공연이다. 캐스트도 훌륭하고,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최상급 연주를 들려주며, 천재적인 연출가 데이빗 맥비카의 스산한 프로덕션이 그 운명적인 분위기를 한껏 부추긴다. 오늘 저녁 공연을 포함, 16일까지 4회 공연이 남아있다.        

[정숙희의 시선]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의 오페라들
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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