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에세이] 숨 쉬는 질그릇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03 13:12:40

에세이, 김홍식 내과의사 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홍식(내과의사·수필가)

 

마당에 작은 분수대를 하나 설치했다. 조그마한 항아리가 몇 층에 걸쳐 옆으로 기울어져 물이 내려가는 모습이다. 졸졸 물 내려가는 소리도 즐겁고 항아리 모양이 예전 한국에서 살던  집의 장독대를 떠올리게 하여 정겹게 느껴진다. 마당 한쪽에는 보통 크기의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다. 별로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분수하고도 잘 어울린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전에 사다놓으신 것이다. 한국의 어머님 세대에게 항아리는 필수품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김장을 할 초겨울이면 나는 마당의 흙을 파서 큰 항아리와 작은 것을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김치가 얼지 않게 가마니를 항아리 입 크기는 잘라내고 덮는 일을 한 기억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김장을 해서 항아리에 가득 채워 넣는 날, 또 장독대에서 장을 항아리 에 담그는 날이면 어머님은 행복해 하셨다. “한 겨울, 한 해는 맛있게 지내리라.”

보통 가정에서 쓰는 옹기로는 독, 항아리, 뚝배기 등이 있다. 옹기는 크게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뉜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초벌구이를 한 그릇으로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고 겉이 거칠거칠하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유약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고 단단하다

옹기는 적어도 1200~1300도라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는데, 800도 이상에서 나타나는 루사이트 현상에 의해 옹기 재료에 포함된 결정수가 열을 받아 빠져 나오면서 옹기 벽에 미세한 구멍이 남는데 그 크기가 산소보다는 크고 물방울 보다는 작다. ‘옹기는 숨을 쉰다’는 말은 이 때문이고, 물보다 작고 산소보다 큰 소금이나 설탕이 옹기 표면으로 흘러나와 맺히기도 하는데 이를 ‘옹기가 땀을 낸다’고 표현되었다. 간장, 된장 등은 소금이 너무 빠져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질그릇 대신 오지그릇을 사용한다, 오지그릇은 바람은 통해도 물은 통하지 않는다. 옹기의 배불뚝이 형태는 햇볕을 골고루 받아 용기의 상하 부위 온도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며 여러 개를 나란히 붙여 놓아도 아래 부분에 빈 공간이 생겨 바람이 잘 통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음식물을 자연발효 시켜 맛과 신선도를 장기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적합하다. 옹기의 대표되는 항아리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저장하는 용도 외에, 김장 김치, 물 항아리, 곡식 저장용기로 사용되었다. 

소금은 음식의 간을 조절해주는 반면 간장은 음식에 깊은 맛과 향을 더해주는데 간장의 신맛·단맛·짠맛·쓴맛·감칠맛 등을 나타내는 물질의 주체는 녹아있는 아미노산이다. 필자는 간장과 된장이 만들어 지는 과정이 항상 궁금하였다. 콩을 삶아 메주 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따뜻한 곳에 두면 우리의 일반 환경 속에 있는 미생물, 특히 곰팡이가 메주에서 왕성하게 자란다. 각종 미생물이 단백질분해 효소뿐만 아니라 당 분해 효소, 지방 분해 효소 등을 동시에 메주 속에 생산해준다. 그 다음 소금물에 메주를 넣어 두면 메주 속의 효소가 녹아 나와 콩 단백질에 작용해 서서히 분해를 일으킨다. 콩 단백질이 분해되어 많은 아미노산이 녹아 나올수록 간장 맛은 좋아지며 질 좋은 간장이 된다. 숙성 후 걸러서 남는 부분을 된장으로 사용한다. 간장이 검은색이 되는 것은 당과 아미노산이 결합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편 재래식 메주에 번식하는 곰팡이 중에 누룩곰팡이와 비슷한 ‘Aspergillus flavus’라는 종류가 자라 맹독성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을 생성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간장의 숙성과정 중에 아플라톡신이 분해돼 그 양이 허용 기준치 이하로 줄어들어 인체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시판되는 메주 중에 자주 기준치 이상이 검출돼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서양인들이 간장과 된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기호성의 문제도 있지만 이런 곰팡이 독소를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부엌과 가까운 집 뒤 높직한 곳에 장독대를 두었다. 장독대에 그 집의 웬만한 세간사리가 다 얹혀있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하였다. 큰 독, 항아리, 단지, 동이, 떡시루, 약탕기 등이 정겹게 놓아져 있었다.

진흙으로 빚어지는 항아리의 가치는 들어가는 내용물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인간도 마치 연약한 질그릇과 같다. 그러나 생각하는 그릇이다. 우리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그 사람의 가치는 달라진다. 좋은 것을 담을수록 귀한 존재가 되고 그 향기는 흘러나오게 된다.

[에세이] 숨 쉬는 질그릇
김홍식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시]  치마폭에

월우 장 붕 익(애틀랜타 문학회원) 괴테와 레오나르도가체육관에서 만났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카메라로 찍어서여인의 운동하는 모습을그리어 주었는데괴테는그림 그릴줄 모른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박영권의 CPA코너] 나의 소득은 세금 보고 대상인가?
[박영권의 CPA코너] 나의 소득은 세금 보고 대상인가?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많은 납세자들은 “세금을 낼 만큼 벌지 않았는데도 신고를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자주 갖는다. IRS는 소득세 신고 여부를 결정할 때 소득 규모

[법률칼럼] 결혼 영주권,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케빈 김 법무사  결혼 영주권 심사가 전례 없이 강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결혼만 하면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갈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인 이민 경로로 인식되었지만, 이제 그 공식

[칼럼] "삭제 키 없는 기록, 한국일보의 윤전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칼럼] "삭제 키 없는 기록, 한국일보의 윤전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행복한 아침] 아직도 새해다

김 정자(시인 수필가)                                           새 달력으로 바뀐 지 딱 열흘째다. 달력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태엽처럼 감겨

[내 마음의 시] 감사 여정
[내 마음의 시] 감사 여정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12월 31일 한해가 가고 있는 순간 순간추억이 떠 오른다겁도 없이 퍼 마시고기고만장 고성방가노래하고 춤추며 개똥 철학 읊어 댄수 많은

[신앙칼럼] 알파와 오메가(The Alpha And The Omega, 요한계시록Revelation 22:13)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요한계시록 22:13).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에서

[한방 건강 칼럼] 말초신경병증의 한방치료
[한방 건강 칼럼] 말초신경병증의 한방치료

Q:  항암 치료 중입니다.  얼마전 부터 손가락의 심한 통증으로 일을 좀 많이 한 날에는 주먹을 쥘 수 없고 손가락들을 굽히는 것도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한방으로 치료할 수 있

[삶이 머무는 뜰] 헤픈 마음들이 빚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조연혜 어떤 말들은 빛을 발하는 순간이 따로 있다. 함부로 낭비한다는 뜻의 ‘헤프다’도 그렇다. 저무는 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이 단어가 꼭 있어야 할 자리는 ‘마음’ 곁일지

[삶과 생각] 2026년 새해
[삶과 생각] 2026년 새해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사람들은 누구나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천당, 지옥, 극락, 연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알거나 직접 보고 겪은 사람이 없다. 각자의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