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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 주69 시간제 유감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3-29 12:43:18

뉴스의 현장, 남상욱 LA미주본사 경제부 차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남상욱(LA미주본사 경제부 차장)

지난 24일 유튜브 채널 ‘너덜트’에 올라온 영상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화제다. 5분29초 분량의 이 영상은 최근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주69시간제’ 개편안이 도입된 것을 가정해 한 중소기업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상에는 업주와 대리, 신입사원 등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업주는 “일이 많을 때는 바짝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쉴 수 있는 아주 탄력적이고도 유연한 주 69시간 근로제”라고 말하면서 시행에 들어간다. 주69시간제가 시작된 지 1주. 축 늘어져 있는 대리에게 신입사원은 “(주 69시간제) 좋은 거 아니에요? 야근 계속하면 돈 더 받을 수 있잖아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대리는 “우리 회사는 포괄임금제라 안 된다”고 설명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 체결 시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 초과 근무 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다. 

신입사원은 이어 “근데 주 69시간 다 일하고 다음 주 내내 쉬어버리면 우리에게 이득 아닌가”라며 “일이 없을 때 다 같이 쉬면 되지 않나”라고 묻자 대리는 “일할 사람이 없지 않냐”며 “회사에서 일이 없는 날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답한다.

주 69시간 근무에 지친 대리는 결국 사장에게 “매주 69시간 근무를 시키는 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이라고 항의하며 휴가를 떠난다. 1주일 간의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자, 자신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장은 “오래 쉬고 싶은 거 같아서 새로운 친구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꿈이었고, 현실로 돌아온 대리가 커피를 사 달라는 신입사원에게 “사줄 테니 관두지 마요”라고 말하며 영상은 끝이 난다.

이 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28일 현재 200만명 이상 시청했고 댓글만도 8,100여건이 넘을 정도다. 그만큼 한국의 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반증이다.

선진국 반열에 이름을 올린 한국에서 주 최대 69시간제의 도입을 놓고 노사간, 정부와 국민 사이에 반목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주 69시간제는 미국 주류 언론들에게도 큰 뉴스 거리가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 정부는 주69시간제를 원한다. 청년층은 반발한다’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내 청년층의 반발로 한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주69시간제 도입 결정을 재검토해 현재 주52시간제보다 많은 50시간 중후반대로 늘리는 대안을 거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WP는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주40시간 근무가 기본이고 초과 근로는 12시간으로 한정됐지만 현실적으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초과 노동 시간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NBC와 CNN은 한발 더 나아가 악명 높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에 의한 폐해를 다루기도 했다. 한국의 임금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 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4번째로 많다. 미국과 프랑스 임금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 시간은 각각 1,791시간과 1,490시간이다. 

소위 야근이라 일컫는 오버타임 근무가 일상화해 있고 직장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기 힘든 데다 퇴근 후엔 회식까지 참석해야 해 과로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주69시간제 도입은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주69시간제 논란과는 정반대로 미국에서는 노동 시간을 줄여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현행 주40시간제를 주32시간제로 단축하자는 법안이 연방 하원에서 발의됐고,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도 지난해 500명 이상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4일제로 노동 시간 단축을 골자로 한 AB2932 법안이 추진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시대에 역행하는 노동 시간 연장을 추진하려는 데는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소통에 의한 공감이 부족한 탓에서 기인된 것이라 안타깝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 약식 문답(도어스테핑)을 통해 그나마 소통의 노력을 보였지만 지난해 11월18일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후 언론 앞에 나서 질문을 받고 답을 한 적이 없다. 주69시간제 논란도 말만 던진 채 윤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을 담고 싶다고 했다.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는 의미의 ‘더 벅 스톱스 히어’(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있다고 지난해 대선 전 공개된 ‘석열이형네 밥집’ 유튜브 영상에서 말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책임을 지기 위해 독단 대신 민의를 살피는 일에 힘썼다. 7년 동안 월 평균 3.5회나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그에 따른 반론을 들었다는 것을 윤 대통령은 알까?

주69시간제 논란은 53년 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으로 요구한 절규를 다시 소환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뉴스의 현장] 주69 시간제 유감
남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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