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 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떠 오르고 둥 둥 산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 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볼까 고운 사람아
난 혼자서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아 --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아
달가고, 밤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아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시 박두진 ,1916--1998,호는 혜산)
박두진 시인은 1930년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을때 ‘청록파’ 시인으로 조지훈, 박목월 시인과 ‘청록집’을 낸 조국 해방을 애타게 그리며 한국 문학사에 ‘해와 어둠을 노래하다’ 많은 시를 남기신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춥던 눈보라 산 넘어가고 춘삼월 꽃피는 봄이 왔는데 지구별 사람들만 엄동설한 겨울을 사는가…
살얼음 겨울을 /가슴에 묻고도 꽃들은 핀다/꽃들의 가슴에는 /영혼을 깨우는 시가 사는 / 마을 있는 마을이 있나봐--
봄꽃들이 만발한 꽃밭에 서면 난 왜 사람임이 부끄러운지 모른다. 온 우주 별 중에 지구는 작은 진눈깨비 같은 초라한 별이라는데 그중에 우린 백년도 못사는 하루살이처럼 잠시 스쳐가는데 왜 우린 전쟁을 만들고, 사람을 인질로 잡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지 가슴 시리다… 새로 올 봄길을 달려가 만나야할 그 고운 님이 아직 지구별엔 오시지 않았나 보다… 우린 자연만 닮아도 티끌같은 세상에 가슴 맑고, 눈도 맑고, 푸른 하늘, 빛난 새 아침, 맨발로 달려가 향기로운 풀 언덕에 꽃가마 쓴 아름다운 봄처녀를 맞이 할수 있을텐데… 자연의 일부인 우리 가슴에얼마나 좋을까… 너는 진달래, 나는 벚꽃 자신의 꽃시계가 열리지 않는 수많은 땅속의 꽃들을 담을 수만 있어도 세상은 얼마나 행복할까… 일제의 설움 속에서도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 지운 나의 사람아… 달가고, 밤가고, 눈물도 가고 향기로운 이슬밭 언덕 총총 달려올 향기로운 봄을 기다리신 시인 박두진님 ‘청산도’ 봄은 왔는데, 흰구름 건넌 자리, 넘었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소리… 들리는가 시인은 노래하셨다.
시가 사는 마을
오솔 길 사이로
겨울 철새 울다 간 그자리에
바람안고 시가 산다
이끼 낀 바위틈 한폭의 풍란
시의 고운 눈물이다
사람이 버린 길
잎도 지고 꽃도 지고
빈산 홀로 서있는 성자같은 나무들
깊디 깊은 산 메아리
묵언의 시가 운다
여인의 하얀 치마폭
산을 휘감은 묵언의 침묵
시가 살아 있는 마을
열린 하늘이 산다
달이 뜨고 지고, 봄이 오는 소리
길 떠난 나그네, 빈 그자리
하늘 처럼 그리운 사람 안고
묵언의 시가 살고 있었다. [ 시 박경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