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호(자유기고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온 몸에 가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오자 눈앞에는 하얀 대리석 바닥이 보이고 고개를 돌리니 가파른 계단에 내 몸 뚱아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럴 수가…. 사람이 사고를 당할 때에는 대개 자신에게 닥친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고 본능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새카맣게 모르고 당하다니….
계단에 떨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계단인 줄 모르고 발을 헛딛으며 그대로 밑으로 추락한 것 같다. 아주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라 천정은 높고 조명은 어두웠다. 높다란 천정은 거대한 돔으로 되어있고 그 밑은 맨 아래층에서부터 천정 끝까지 텅 비어있는 공간으로 되어있었다. 둥그런 건물 벽을 따라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층과 층 사이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연결되어있는데 계단은 건물 구조상 눈에 잘 안 띄었다.
나는 일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옆에 있다가 사고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앰뷸런스를 불러주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파라메딕이 오더니 나를 들어 올려 들것에 누인 다음 앰뷸런스로 밀고 갔다. 차가 병원 응급실로 이동하는 동안 파라메딕은 퉁퉁 부은 왼발과 왼쪽 얼굴에 얼음 팩을 대주면서 인적사항을 물었다.
응급실에서 X Ray와 CT 촬영을 하고 의사가 와서 결과를 알려줄 때까지 두어 시간을 누워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병원 신세를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내가 졸지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와 누워있으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 높은 곳에서 대리석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머리와 온 몸을 세게 부딪쳤으니 늙은 몸이 온전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왼쪽 발꿈치 뼈에 두 군데 골절상을 입었으며 다행히 척추와 두개골은 이상이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심한 충격을 받고도 발꿈치 뼈 이외에 다른 뼈는 이상이 없다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바로 멸치야. 내가 맥주를 좋아해서 안주로 칼슘이 풍부한 멸치를 많이 먹었는데 아마도 그 덕을 본 게야.’
그 후 한 달 정도를 침대에 누워 지내야했다. 밤이면 발이 아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앉았다가 눕거나 자세를 조금만 뒤척이면 벽과 천정이 핑그르르 돌아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쓰지 못하는 왼쪽 발과 다리는 퉁퉁 붓고 허벅지는 자꾸만 가늘어지고 힘이 없어졌다. 목발을 짚고 화장실과 주방에 가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6주정도 지난 후 의사가 이제 왼쪽 발로 땅을 짚어도 된다면서 앞으로 2주 후에는 깁스를 풀고 운동화를 신어도 될 것 같다고 말하였다. 의사의 말에 고무된 나는 목발을 짚고 집을 나와 뉴욕행 기차에 올랐다. 펜 스테이션에서 내린 나는 딸깍 딸깍 목발을 짚으며 타임스퀘어까지 걸어갔다 왔다. 얼마만의 외출이고 얼마만의 산책인가. 집에 와서 ‘헬스앱’을 열어보니 1만보 가까이 찍혀있었다. 그렇게 무리를 해서 그런지 의사가 말한 2주보다 2주가 더 지나서야 깁스를 풀고 운동화를 다시 신을 수 있었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마치 다이빙보드 위에서 물이 없는 수영장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떨어진 형국인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멸치가 아니었다. 그날 추락하는 순간, 생과 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그 순간에 나를 받쳐준 보이지 않는 손길은 주님의 은총이라고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나 같은 죄인 구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