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인간 오감 중 가장 먼저 열리는 것이 청각이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기관 또한 청각이라 한다. 모태에 머무는 동안 양수 속에서 유영하면서 모든 자극을 귀를 통하여 소리를 느끼고 감각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출생 후에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오감 기능 중 청각이 먼저 반응하면서 세상과 소통이 시작된다.
필자는 어렸을 적에 오른쪽 귀가 귀앓이를 겪은 탓에 귀 감각신경이 일찍이 기능을 소실해 버렸다. 한 쪽 귀의 청력 손실로 인한 불편과 정확하게 듣지 못함으로 빚어지는 에피소드는 가히 출판물로 등장할 만큼이다. 인체 신비는 청력이 제 구실을 못해도 시력이나 체감 능력에서 비롯된 느낌이 제 기량을 유지하고 있으면 잘 듣지 못하는 기능장애가 있더라도 다른 기관 기능들이 정상이면 한결 불편을 덜 수 있게 된다. 인체 어느 기관이든 쓰임과 쓸모의 역할, 작용, 능력이 상부상조 선을 넘어 정신적 기능까지 뛰어 넘을 수 있는 신체 증상의 의학적 개요가 진단적 증상으로 이미 의학계에 설명 된바 있다. 신비에 가까운 인체의 묘한 교차 상관관계의 가시 체험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청력 기능 부족으로 말하고 듣는 것에 일상 집중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혼자만의 사념에서나 자연에서 생의 해답을 찾아내려 곡진하고 절박한 탐색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이해하고 지각하고 고스란히 납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음은 영혼의 중심적 기관으로 인간의 사상, 감정, 의지의 모든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인간 존재성의 근본 순리와 이치를 깨닫아 간다면 근원적 존재 연유의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청력 기능 부실로 어쩔 수 없이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한다는 자괴감에 잠길 때가 심상찮게 발생하곤 한다. 심할 때는 갈피 잡을 수 없는 혼란 엄습이 시작되고 뒤죽박죽 무질서한 상실감이 일상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세월에 맡기고 기대다 보면 차츰 안정적인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고 묵상과 고해의 자의식이 아늑한 평안으로 자리잡는 감각을 인식하게 된다. 마음 갈피가 적요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도록 개괄적 요약이 큰 몫을 한 셈이다. 스스로를 향한 애틋한 지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희열도 맛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우수하다는 보청기도 원초의 청력을 가늠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선택한 최초의 일이 글쓰기였다. 연필이 손이 쥐어지고 깨우친 문자를 한 글자씩 적어가는 기쁨이 동기부여였다. 쉽게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습관처럼 내력을 만들어 온 글쓰기였다.
한 번은 글을 읽어내기가 힘드셨던지, ‘이걸 글이라고 쓰느냐’ 는 회초리를 듣고 말았다. 쓰는 고충을 너그러이 공감해주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빚어낸 불상사였겠지만 듣지 못하는 아픔보다 더 짙은 아픔이 되어 심중에 꽂혔다. 회초리가 비단이라 한들 ‘비단 대단 곱다 한들 말 같이 고운 것 없다’ 했는데, 극적인 심경 참화를 빚고 말았다. 이미 마음을 다친 것이다. 마음이 탈이 나고 굴곡이 빚어지는 동안 아픈 나에게 주고 싶은 말들이 모아지고 있었다. 돋보이는 글이나 불식 간에 감동을 이끌어내는 수작이 부러운 나머지 부끄러운 욕심으로 넘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믿음 가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격려는 흔쾌히 해주어도 될 것 같다.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편하게 살 것, 지레 겁먹지 말 것. 자신이 선택한 건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나는 내 것이기에 스스로를 아끼고 먼저 알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귀착했다. 본의 아니게 들어서 민망했던, 그 민망이 상처가 되었던 일들까지 묵상으로 위로를 이끌어내며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단계까지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청각 부실이 빌미가 된, 말 같잖은 말은 담아두지 말자. 자극도 받지 말자, 옹이진 마음을 다 풀어 흘러 보내자고, 상처가 덧나 마음까지 고장나기 전에 아픔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흐름을 거스르지 말자. 견디고 견디며 묵묵히 아픔을 내려놓는 마음을 지켜 보노라면 진짜배기 꾸밈없고 거짓없는 나를 만나는 길이 드러나기 시작할 터이니까.
무언가 잡히지 않는 닫혀있던 것이 트이고 풀어지면서 평안의 빛줄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남은 날들을 살아가야하는 세월의 흐름 앞에 한치 앞도 모르는 하루들이지 않은가. 물 흐르듯 살아가노라면 떠나는 날 나를 더 자상하게 알게 되겠지. 하루 하루들이 기쁨이 될 것이고, 지금 이대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으매 내가 나의 희망이요 꿈이요 등불이다. 착하고 선한 약자를 위한 세상이 도래해야만 한다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하여 세상이 미워질 때 마다 나를 찾아나설 수 있는 심연의 보루가 있음이 행복하다.
청력 결손이 깊어가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 훤하게 열려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부푼다. 이 봄날이 다하기 전에 나를 찾아 수습할 수 있는 봄이 지나는 길목이 더 없이 다정하다. 소망 안에서 늘 깨어있는 삶으로 후회없이 걸으려 한다. 하늘로서 내려지는 창조주의 빛결 같은 속삭임을 가슴으로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