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현대인의 방황은 잘못된 자기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부정적 자아 형성의 배후에는 상처받은 자기 이미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나의 이웃들은 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의 물음보다 더욱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의 문제 입니다. 이것을 자아 인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에는 자아 인식에 대한 서로 상반하는 두 개의 가치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비교의식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의식입니다. 전자는 부정적 자아형성에 기여하고 후자는 긍정적 자아 형성에 기여합니다.
모든 부정적 자아 형성은 끊임없는 비교의 갈등에서 빚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외모를 나의 외모와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재능을 나의 재능과 비교합니다. 다른 사람의 환경을 나의 환경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그 휼륭한 부모와 나의 무식한 부모를 비교합니다. 그리고 비교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자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반면에 창조 의식을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로 나와 유사한 다른 존재는 하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다른 누구를 질투할 필요도 모방할 필요도 동경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나를 나답게 지으신 하나님은 내가 걸어야 할 나의 삶의 모습을 작정하시고 이를 위해 내 생애 속에 활동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나의 독특성 나의 유일성을 독선의 차원이 아닌 창조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나의 나다운 모든 상황과 존재의 모습을 사랑하고 수용합니다.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한 세 가지 절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소속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나는 받아들여지고 있는가의 물음입니다. 둘째는 가치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나는 요구되고 있는가? 하는 자기 가치에 대한 물음 입니다. 셋째는 신뢰감입니다. 이것은 나는 할 수 있는가 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물음입니다. 이 물음들에 대한 만족할 만한 자아 용납이 없을 때 우리는 소외감, 열등의식, 피해 의식의 늪 속에 빠져 버립니다.
성경은 이런 현대인의 물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참으로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용납하고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나아 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 인간의 뿌리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나의 나된 본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 참된 의, 거룩함은(엡4:24)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들입니다. 이 모습을 닮아 거룩한 도덕적 인격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 그 속에서 내가 사랑할 나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목적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표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롬8:29)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 아들의 형상이 너희 속에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갈4:1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도들에게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그와 같이 됨”(요일3:2)에 대한 영광스러운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창조신앙, 구속신앙, 재림신앙의 3대 기둥으로 하여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은 나를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칼빈의 고백은 진리입니다. 참된 인간 회복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다운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떻게 나는 하나님의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놀라운 작품입니다.(엡2:10)
둘째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만들어 주시는 이에 대한 신뢰 없이 어떻게 나는 그의 계획대로 만들어져 갈 수 있겠습니까?
셋째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협력입니다. 이것은 그 분을 나의 주로 믿고 받아들인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응답의 태도와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신기하고 놀라운 작품인 나의 형용 앞에 신비로운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모습 그대로의 나를 더욱 더 사랑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나를 계속해서 만져주시는 다정하고 친절한 주님의 손길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