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다니엘은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순교자의 표상입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처한 삶의 정황이 양상은 달라도 당면한 고난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교회의 본질이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의 궁극적 목적과 동일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으로 이방국가에 끌려갔어도 결코 비굴하거나 타협적인 삶을 살지 않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동일한 삶의 패턴을 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자굴에 던짐을 당하고, 불 구덩이에 화형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고난 속으로 던져지기를 원하는 세상을 <오히려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심의 뜻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지혜는 곧 분별력이요 통찰력입니다.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게 만드는 신앙의 뿌리입니다. 만일 교회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목적을 잊어버리고 <안일함>에 빠지게 되면 교회는 예수님이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침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어 무가치하게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세상에 오셨는지 한 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 함이라”(요10:10).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본질에 등한시하고 비본질에 더욱 더 관심을 가질 때, 세상은 교회를 더 이상 본 받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원과 진리의 거울>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다니엘, 순교의 순간에도 결코 흔들림 없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중심에 불타오르고 있어야 할 신앙의 모본 그 자체입니다. 더 나아가서 <슬픔의 길,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걸어가신 순교자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인 “양의 생명, 그 이상의 풍성함”에 목숨을 거신 것처럼 눈 앞에 보이는 얄팍한 이합집산의 산술적 사고에 입각하지 말고, 대의적인 차원에서 멀리 내다 보고, 높이 올려다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 분별력을 가진 지혜자>가 되라고 다니엘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포효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 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