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목사)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세상의 학교에서 인생학과를 전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인 것이다.
젊어서 배워야하고 늙어도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고, 또 다른 기회를 찾는 것이다. 늙어갈수록 약하고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세월의 긴 강물에 인생의 배를 오래 탄 사람으로서 농익은 깊은 맛과 위기 속에서의 여유와 갈등 속에서도 편안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젊을 때는 보지 못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자세히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문을 배울 때 그 한문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알고 읽는 것처럼 늙어가면서 몰랐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것인지, 왜 그런지 읽을 줄 알아야한다.
그것들이 바로 시간과 사람과 장소의 언어들이다. 누가 말한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때에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과 같이 이제 복권을 긁어가면서 숨겨지고 가려졌던 시간과 사람과 장소를 읽어야 한다.
시간은 금은 아니지만 정말 금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한 시간이 금쪽같은데 왜 그 때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고 빌었던지 모른다. 시간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소중했던 것들이었다. 지난 시간도 그렇고 지금 살아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다.
그래서 날마다 “Oh Wonderful”이라고 시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울고 웃었던 시간들, 느리고 빨랐던 시간들, 지루하고 재미있던 시간들은 다 모두 나의 인생을 채운 시간들이었다.
어떤 시간은 지우고 싶었지만 그 시간들도 나의 인생이라고 읽어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웠던 가를 찾게 된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했던 그 사람들! 가족은 물론 소꿉친구들, 동창생들, 사랑했던 사람들, 미워했던 사람들과 함께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떠난 사람들도 다 귀하고 귀한 존재들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악한 악마일 수 있고 천사일 수 있다.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사람 때문에 절규했던 것들을 떠올릴 때 우리의 인생은 사람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착하다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악하고, 내가 악하다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천사였는가를 읽어갈 때 비로소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감사를 품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나를 깨닫게 해준 사람들이라고 읽어갈 때 그 사람들을 향해 “Oh Beautiful”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결국 아름다운 삶인 것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현장이고 장소이다. 날마다 생사가 오고 가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소식을 접하는 생존경쟁과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땅에 살고 있다. 언제라도 편안한 세상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늘 불경기, 전쟁, 가난, 분리, 대립, 싸움, 실패, 미움이 공존하는 그런 세상이다.
이제 이런 세상의 숲을 지나와 조용히 뒤를 돌아보며 또 앞을 바라보는 이 때에 이 세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그래도 나를 위해 준비된 인생의 경주장이었다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달렸던지 내가 달려온 그 삶의 현장, 장소는 행복이고 기쁨이었다고 읽어야 한다. 후회와 실패감으로 입을 꾹 다문 그런 모습이 아니라 마라톤 경기에서 일등으로 들어온 선수가 보여주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깊게 웃는 것처럼 늘 어느 때든지 조용히 자기를 칭찬하며 자신의 삶이 행복이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늙어가는 것은 곧 읽어가는 것이다. 시간도 읽고, 사람도 읽고, 살아왔던 삶의 현장 장소도 읽어가면서 Wonderful, Beautiful, and Happy 라고 되뇔 때 그 누가 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