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깊이 찔렀다. 한참을 분주하게 보복해줄 한 마디를 찾아 헤맸다. 담아서 처리하지 못한 무수한 말들은 내 마음을 휘젓고 다닌다.
김윤나의 책 ‘말 그릇’을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말 그릇의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말 그릇이 넉넉하고 깊은 사람은 담은 말이 쉽게 새어 나가지 않고 넓은 그릇에서 필요한 말을 골라낼 수 있다. 그러나 그릇이 좁고 얕은 사람은 말이 쉽게 흘러넘치고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다.
내가 그 말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잘못되었던 것이 아니라 내 말 그릇이 작아서일 수 있다. 타인의 말을 탓하려고 책을 열었지만 결국 나의 언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언어의 심리적인 구조를 알고 보면 내가 왜 특정한 말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고 비로소 자기 말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듀크대학 연구진이 2006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의 40%는 습관에 의한 것이다. 당신이 오늘 사람들에게 건넸던 말, 그것은 어떤 의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습관처럼 어제의 패턴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말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와 시간이 담겨있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새겨지듯 말에도 한 사람의 세월이 새겨진다.
그 사람은 고슴도치처럼 무수히 나온 가시들을 안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찌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르치는 직업 때문일까. 그 순간 상대가 잘못 말한 것을 바르게 고쳐주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린다. 상대의 문제가 발견될 때 적극적으로 고쳐주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에게 ‘교정 반사’라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본능이 강해질수록 상대방은 오히려 변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고쳐 담는 쪽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는 동시에 상대방의 말속에 숨어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도 파악해내는 것을 뜻한다. 내가 한 말 때문에 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울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내뱉는 말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말에 ‘말’에 대한 속담이 많은 게 아닌가 싶다. 매일 하고 사는 말! 그 말의 힘을 다시 생각한다. 내 말이 누군가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