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꿈”으로 시작하여 “꿈”으로 진행하다 “꿈”을 위해 자신의 인생전부를 불태운 미국의 사회인권운동의 선구자가 있다면 당연히 마틴 루터 킹 목사님(Dr. Martin Luther King Jr.)이십니다. 그가 외친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 꿈은 곧 비전입니다. 1965년 3월 24일, 셀마의 Brown Chapel A.M.E. Church가 그 꿈의 대행진의 시발점이 된 것은 세 사람의 공로가 혁혁함을 볼 수 있습니다. 보스턴에서 온 James J. Reeb, 디트로이트에서 온 Viola Gregg Liuuzo, 메리온에서 온 Jimmy Lee Jackson의 희생의 죽음이 흑인인권운동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도화선입니다.
미국의 오늘은 한 사람의 꿈이 “인권”의 꽃을 피우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솔로몬의 지혜로 도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히13:8). 하나님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잠29:18)”고 경고하십니다. 왜 꿈이 없으면 국가의 존폐위기가 직결될까? 꿈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꿈은 곧 말씀입니다. 꿈은 곧 인생의 실존입니다. 그래서 꿈이 없다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도, 말씀도, 인생의 실존 자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국가, 하나님 없는 사회, 하나님 없는 개인에게 결코 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을 “부유(浮游)”라 부릅니다. 물결 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그 속에 분명한 확신의 의지도, 삶의 의욕도 없습니다. 짓밟으면 짓밟히고, 빼앗으면 빼앗기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기기 때문에 국권을 상실하고, 모국어를 상실하고, 심지어는 숨 쉬는 자유조차 다 상실하여도 생각이 전혀 없는 무뇌증(無腦症, Anencephaly)의 백성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과 영원을 지혜롭게 살 수 있는 최고봉의 삶은 바로 “꿈”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막연한 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분명한 결과가 있는 꿈이어야 합니다. C.S. Lewis가 런던대학교의 졸업식 연설에서 이 “꿈”의 실존을 “반지의 안쪽(The Inner Ring)”이란 연설을 함으로써 명연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꿈은 인간 행동의 크고 영구적인 원동력이다(Vision is one of the great permanent mainsprings of human action).” 엄동설한의 혹한의 겨울에도 돌 같이 꽁꽁 언 땅을 비집고 생명의 의지를 불사르며 노오란 꽃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일어나는 “민들레꽃(Dandelion)”처럼 꿈이 있는 백성은 보기에는 약하고 여려보일지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생명력은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꿈과 비전>은 언제나 꺾이지 않고, 쇠하지 않는 <은근과 끈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이 완전히 꺼진줄 알았는데, 그 속에 남아있는 <작은 불씨>가 다시 재점화의 기운을 잃지 않고 있어 마침내 또 다시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되게 하는 것처럼, <꿈>은 아주 작은 <꿈>일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온 세상이 칠흑같이 짙은 어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육지와 바다를 이루라!” “해와 달과 별들이 있으라!” “바다의 각종 물고기와 공중의 각종 새들이 있으라!” “우리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있으라!”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순간 하나님의 꿈은 “살아있는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은 <꿈의 대명사>입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꿈의 실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미지)을 닮아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은 그 속에 하나님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품는 순간 그가 가진 꿈은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잠29:18).